오피니언 사설

전교조 입맛에 맞춘 단체협약 고쳐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시교육청과 전교조가 맺은 단체협약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2004년 체결된 단협은 위법적 요소가 많고 교육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그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그 단협에 대해 학교 현장에선 “일일이 전교조 허락을 받아가며 학교 운영을 하라는 얘기냐”는 불만이 많았다. 잘못된 단협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전교조와 재협상에 나서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교육청과 교원노조 간 단협은 조합원 교사의 임금과 근무조건, 후생복지에 관한 사항만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범위를 벗어나 교육정책에 간섭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단협 38조는 표집학교만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는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교육청이 학력진단평가 확대와 학력정보 공개를 추진할 경우 전교조가 단협 위반이라며 물고늘어질 게 뻔하다. 중학교 방과후 학교는 특기적성 교육만 실시하도록 제한하는 조항도 있다. 영어·수학 등 교과 강의도 할 수 있도록 한 정부 방침과 어긋난다. 출퇴근 시간 기록부를 없애도록 규정해 교사가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해도 학교장이 문제삼을 수 없게 했다. 전교조 선생들의 천국을 만들어 주기 위한 단체협약이다.

이는 전교조 측 요구를 당시 교육감이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이러니 학교 운영이 전교조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도 잘못된 것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전교조 등 교원노조가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협 자체를 폐기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공 교육감은 전교조 지지를 받은 후보를 어렵게 누르고 첫 직선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다. 앞으로 학력신장·교원평가제·학교선택제 등 교육정책을 놓고 전교조와 사사건건 힘겨루기를 해야 할 처지다. 물론 전교조의 주장이라도 합당하면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그러나 원칙 없이 전교조에 더 이상 끌려다녀선 안 된다. 전교조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단협 재협상이 그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