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별난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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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표(票)를 얻기 위해 남발하는 허튼 약속,즉 「공약(空約)」은 선거와 그 역사를 같이 한다.미국에서 「공약」은 「공중에 뜬 파이(pie in the sky)」로 불린다.
1910년대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조 힐이 작사한 세계 산업노동자들의 노래책자 가사(歌詞)에서 따왔다.「쥐꼬리만한 봉급으로죽어라고 일하고 죽을 때 공중에 뜬 파이를 얻게 되리라…」는 자조가 담겨 있다.
모든 약속은 깨질지도 모를 리스크(위험부담)를 수반한다.정치적 약속은 그 성격상 1백% 지켜질 수 없다고 한다.정치적.사회적 문제 해결에 정부나 국회의원들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한계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공약을 내걸 때 첫번째 금기(禁忌)는 과다공약(overpromising)을 삼가는 일이다.공약의 가짓수가 아니고 그 내용의 지나친 과장이다.「모든 국민에게…」「어느 누구도…」「기필코」「결코」「뿌리뽑겠다」「언제든지」「끝장 내겠다」「보장한다」는 식의 단언적 표현은 금물이라고 한다.
과다공약은 어느 구체적 공약의 위반보다 현실정치를 더욱 속으로 멍들게 한다.특정공약을 어겼을 경우 그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는다.과다공약은 「공중의 파이」처럼 기대감만 부추겨정부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심는 다.
「이 땅에서 영원히 빈곤을 몰아낸다」「폭력사범 근절」「무엇 무엇의 제로화」「내 재임중에는 절대로…」 같은 약속이 그렇다.
내용이 강하지 않은 공약은 호소력이 약하게 마련이다.「내 입을 지켜보세요.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Read my lips,No new taxes)」라는 부시대통령의 공약은 그 호소력과구호의 리듬에서 수작(秀作)으로 꼽힌다.이 공약 을 어겨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다.
「모든 미국인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약속한 클린턴은 이 공약을 공격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부인 힐러리를 앞장세우다 힐러리의「정치적 실종」을 자초했다.
15대 총선에 서울서 출마한 신한국당 어느 후보가 대통령앞에서 「노(no)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가 신기하다는듯 이를 크게 보도했다.장관까지 지낸여당 유력인사의 「별난 공약」이다.
문민정부의 민주화를 보는 바깥의 시선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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