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감세도 증세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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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나라당의 감세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취약계층의 세 부담을 집중적으로 덜어주는 쪽으로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서민용 생필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감면, 중산층의 소득세 감세, 중소기업의 법인세를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축된 내수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감세는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사안이다. 지난해 공적 자금과 국가 채무를 갚는 데 5조원을 쓰고도 4조8000억원이 남았다. 세금을 내릴 여지가 생긴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5년 동안 증세에 치중하면서 세 부담이 과도하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지금 물가상승률이 턱밑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금융정책을 동원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재정 확대는 물가를 자극하기 십상이다. 현재로선 감세가 경기 조절의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세는 증세만큼 신중해야 한다. 우선 함부로 감세를 남발할 상황이 아니다. 올해부터 고유가 대책으로 3조원 이상의 유가 환급금이 지급된다. 경기가 가라앉고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올해 세수는 예상보다 쪼그라들 소지가 다분하다. 주요 경제연구소들이 “세수 부족을 감안해 세제 개편은 유가 환급금 지급이 끝나는 2010년에 시작하는 게 좋다”고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세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며 무턱대고 소득세 과표구간을 올리거나 세율을 낮춰선 안 된다. 이는 오래전부터 정부가 약속한 ‘넓은 세원-낮은 세율’이란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 서민용 생필품에 대한 부가세 감면 방침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각종 공제·감면을 줄이기로 한 정부의 중장기 세제 개편 방향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일단 세금을 깎아주면 다시 복원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우리의 부가세 격인 소비세를 손댈 때마다 정권이 무너졌다. 아무리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이라고 해도, 경기 부양을 위해 절실하다고 해도 감세는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선심성 감세는 금물이다. 철저히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예산 팽창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독주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기국회 때까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원칙 없는 감세는 엄청난 후유증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