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 정신'으로 250억짜리 미국 회원제 골프장 대표 된 권영채씨

중앙선데이

입력 2008.08.03 11:08

업데이트 2008.08.03 22:57

열아홉에 미국 유학을 떠난 여학생이 30년만에 250억원대 미국 회원제 골프장 대표가 되어 돌아왔다. 캘리포니아골프클럽(GCC)의 케이 맥래플린(49·한국이름 권영채)대표는 남성 위주의 골프 업계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성공을 이뤘다. 22일에는 미국 골프장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문호를 개방하기도 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전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에서 북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10만 명 남짓의 소도시 폴부르크. 백인 부유층이 주로 거주하는 이곳엔 가수 제니퍼 로페즈와 배우 키아누 리브스, 빌 머레이의 집도 있다. 한적한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시설은 비공개 회원제 골프장인 캘리포니아 골프 클럽(GCC)이다. 이 GCC가 지난달 22일 미국 골프장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앞으로 KPGA 선수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훈련할 수 있다. 배타적인 미국의 고급 회원제 CC가 왜 KPGA에 문을 열었을까. 지난달 30일 서울 역삼동의 리츠칼튼호텔에서 묵고 있던 케이 맥래플린(49) GCC 대표를 만나자 의문이 풀렸다. 한국 이름 권영채. 1978년 미국 유학을 떠났던 열아홉 여학생이 30년 만에 감정가 250억원의 회원제 골프장 대표가 되어 고국을 찾았다.

“웬 듣도 보도 못한 동양인이, 그것도 여자가 우리 골프장을 샀느냐면서 폴부르크가 들썩거렸어요.”

권영채 대표는 지난해 2월 GCC를 구입하자마자 ‘올드 보이 클럽(폴부르크의 터줏대감인 부유층 백인 중장년 남성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골프 업계가 워낙 남성 중심인 데다 별다른 시설이 없는 폴부르크에서 GCC는 사교계의 중심지였거든요. 그런데 동양 여자가 주인이 되니까 지역 유지들 사이에 난리가 난 거죠.”

권 대표는 “그런데 실제로는 GCC의 ‘올드 보이’ 회원들이 자신의 골프장 매입을 도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회원권 가격을 반으로 깎는 등 골프장 운영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 사람들 입김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원래 주인인 부동산 개발회사가 서둘러 GCC를 매각하려 했어요.”

덕분에 ‘이름 없는 동양인 여성’인 권 대표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원래 고급 회원제 골프장은 개발업체들끼리 사고파는 것이 관행이에요. 하지만 말 많은 회원들 때문에 빨리 팔아 치우려는 속사정을 알고는 GCC를 개발한 부동산 회사 대표를 무작정 찾아갔죠.”

권 대표는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곧바로 손을 뗄 수 있도록 해주겠다. 나한테만 넘기면 앞으로 GCC 문제로 당신들이 머리 아플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고 장담했다. 이덕에 자신보다 50억원을 더 제시한 경쟁업체를 제칠 수 있었다. “골프장 매입 과정이 통상 4~6개월 걸리는데 전 35일 만에 끝냈어요. 변호사도 안 쓰고 제가 직접 처리했거든요.”

지난해 1월 31일 거래가 완료됐다. GCC를 매각한 회사에서 권 대표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 봤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이라는 말은 그날 이후 숱하게 들었다. 권 대표가 GCC를 인수한 뒤 ‘올드 보이 클럽과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우선 2만 달러까지 떨어졌던 회원권 가격을 4만 달러로 다시 올린 뒤 기존 회원들에게는 “나가 달라”고 통보했다. 분위기 쇄신 차원이었다. “회원들끼리 똘똘 뭉쳐 있어서 굉장히 배타적인 분위기였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새로 가입하기도 힘들도록 만들어 놓은 거죠.”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지역 유지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대가는 혹독했다. 작은 도시가 들끓었다. 하루에 50~100통씩 악의적인 e-메일이 쏟아졌다. “네가 그러고도 이 동네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는 협박 편지도 받았다. 보디가드 고용을 고려할 정도였지만 권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이 동네에 40년을 살았는데…”라며 노기등등한 얼굴로 찾아오는 회원들에게 “So what?(그래서요)”이라며 차갑게 응수했다. “내가 주인이니 억울하면 당신이 이 골프장을 인수하라”고 강경하게 나갔다. 300명이던 회원을 100여 명으로 정리했다. 회원권 가격을 올리고 15만 달러에 법인 회원도 받아 수익을 보전했다. 권 대표는 “골프장 분위기가 안정되고 그린 관리에도 힘썼더니 은행 감정가가 100억원 넘게 올랐다”고 말했다. 골프장 인수 1년 반, 유학 온 지 30년 만이다.

-1978년에 여자 유학생은 매우 드물지 않았나요.
“집안이 유복한 편이었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경주시장도 지내셨지요.”

-골프장 인수에 많은 돈이 들었을 텐데 가족의 도움을 받았나요(권 대표는 관례라며 정확한 인수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전혀요. 내가 직장생활과 부동산 투자 등으로 직접 모았습니다. 오리건주립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 때부터 가족과 소원했어요. 선봐서 좋은 집안에 시집가라는 걸 거부했거든요. 컴퓨터 실습실에 침낭을 두고 먹고 자며 열심히 공부해 겨우 인정받았는데 그 노력을 뒤로하고 ‘누구 집 며느리’가 되기는 싫었어요. 86년 미국인(존 맥래플린)과 결혼하면서 완전히 인연이 끊겼습니다. 결혼식에 아무도 안 왔어요.”

-자수성가하신 거군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한국에선 ‘누구 집 딸’이었는데 미국에선 ‘권영채’로 인정받는 게 정말 기뻤어요. 82년에는 취업난이 심했지만 홍일점 컴퓨터 엔지니어로 입사했어요. 얼마나 기뻤던지 입사번호(15586번)를 아직도 기억해요. 당시 최첨단 분야인 데다 인턴 경력을 인정받아 연봉 2만6470달러로 시작했어요. 당시 은행 지점장 연봉이 2만 달러가 안 됐어요. 최연소 마케팅 매니저가 되는 등 승진을 다섯 번이나 했고요. 마케팅을 아는 엔지니어라는 점 때문에 첨단 분야의 소규모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할 수 있었어요. 최고 연봉이오? 10년 전쯤 27만 달러 정도 받았었죠.”

-성공 비결이 뭐였나요.
“독하게 했죠. 경쟁이 심하다 보니 입사 동기 한 명이 상사의 묵인 아래 저를 심하게 괴롭혔어요. 회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거나 컴퓨터 키보드에 커피를 붓기도 하고…. 제 프로젝트를 훔쳐 제출하기까지 했죠. 1년 동안 꾹 참고 일에 몰두해 그 상사 윗자리로 승진한 뒤 상사와 동료 두 사람을 모두 해고해 버렸어요.”

-정말 독하게 살아오셨군요.
“결혼식 전날까지 일하고, 신혼여행도 해외출장으로 대신했어요. 친구를 만나 수다 떤 적도 없고요. 팝송이든 가요든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곡은 하나도 없어요. 술도 안 하고, 제가 골프장을 하지만 골프도 안 쳐요. 유산 위험 때문에 두 달가량 집에 누워만 있을 때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컨설팅을 계속했어요. 하이테크 분야는 조금만 쉬면 뒤처지거든요. 출산 당일에 퇴원해 일할 정도였죠.”

-오로지 일만 하고 사신 건가요.
“아이도 열심히 키웠어요. 딸이 미숙아라서 빠는 힘이 부족해 (출산보다 힘들다는) 젖몸살을 두 번이나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유 수유도 22개월 동안 했지요.”

권 대표의 딸 케이티 맥래플린(17)은 12세 때 대학에 입학해 지난해 UC샌디에이고를 졸업한 ‘천재 소녀’다. 현재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다.

-독하다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예. 맞아요. 전 결혼에 실패했죠(그는 2004년 이혼했다). 예전엔 뭐든지 하면 다 된다고 생각했지만 안 되는 것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해 보면 되는 것도 있잖아요? 안 하면 될 가능성이 하나도 없죠.”

-그래도 이혼 이후 캘리포니아로 이사 와 생소한 부동산업에 뛰어들 땐 망설여졌을 법한데요.
“실패해도 또 일어서면 되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첨단기술을 파는 것보다 당장 보이는 땅과 건물을 파는 거니까 얼마나 쉬워요(웃음).”

권 대표는 인터뷰 내내 ‘persevere’라는 동사를 여러 번 썼다. 불굴(不屈). “실패는 문제되지 않아요. 실패에서 얼마나 빨리 재기하느냐가 관건이죠.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 포기하는 그 순간, 정말 끝나는 거예요.”


고급 회원제 골프장인 캘리포니아 골프클럽(www.thegolfclubofcalifornia.com 전화 1-780-451-3711)은 300야드에 이르는 드라이빙 레인지를 갖추고 있다. GCC 제공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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