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온 ‘아트 뮤지컬’의 내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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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10면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8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일·공휴일 오후 3시·7시30분 (월 쉼)
문의 02- 501-7888

쉽지 않은 ‘아트’ 뮤지컬 한 편이 국내에 들어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노랑 바탕에 검정 영어 제목만 큼직하게 박아 넣은 포스터도 눈길을 끈다. 뮤지컬의 메카, 뉴욕 브로드웨이 중에서도 ‘오프(off) 브로드웨이’, 즉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극장에서 공연되던 예술성 높은 작품이다. 비상업적 뮤지컬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은 아직도 모험이다 보니, 우리 관객에게는 드물고 소중한 기회다.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원작자인 마이클 존 라키우사(뉴욕대 뮤지컬창작대학원 교수)는 1962년생으로 90년대 중반부터 활약한 작가다. 대형 히트작인 ‘헤어스프레이’ ‘나쁜 녀석들’ ‘프로듀서스’ 등을 얄팍한 계산과 기계적 공식뿐인 가짜 뮤지컬이라 비판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상업주의와 수구주의에 빠진 기존 뮤지컬계를 실험의 용광로로 뒤바꿔놓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씨왓아이워너씨’는 영화 ‘라쇼몬’의 원작자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세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대도시 한복판의 공원을 무대로 1막은 살인 사건에 관한 엇갈린 진술, 2막은 신의 계시와 군중 심리에 관한 이야기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See What I Wanna See)’는 뜻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제는 ‘과연 진실은 존재하는가’이다. 기획사인 뮤지컬헤븐 측은 “최근 뮤지컬을 볼거리와 오락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진지하고 철학적인 작품으로 지적 자극과 문제의식을 주고 싶었다”고 밝힌다.

연출 역시 콜롬비아 출신 하비에르 구티에레스가 맡으며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어 주목받았다. 그는 뉴욕에서 ‘라쇼몬’ ‘보이체크’ 등의 연극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번 연출에서는 원 공연과 달리 무대 4면에 빙 둘러 관객을 배치하고 관객석 머리 위로 무대 배경을 대신하는 영상물을 쏘는 등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색색의 천이 드리워진 화려한 장치와 이국적 의상, 재즈·가스펠·팝·타악기 등이 어우러진 현대적인 음악이 연주된다. 뮤지컬 작곡가 박천휘씨는 “가장 지적인 관객들조차 정신을 차리고 봐야 할 정도로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스타라기보다 실력파 배우들이라 할 수 있는 강필석·김선영·홍광호 등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이 어려운 작품의 ‘기’에 조금도 눌리지 않고 그간 쌓아온 내공을 발산시킨다. 이나영 음악감독도 능숙하게 밴드를 이끌며 노련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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