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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 달콤 새콤한 냉면 타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3호 14면

종로구 예지동 오래된 시계골목에 위치한 ‘곰보냉면’집의 물냉면

“평양냉면 이야기는 지난해 이맘때쯤 했잖아.”
그래서 찾아든 곳이 함흥냉면집이다. 오장동이나 명동으로 갈까 하다가 서울 종로구 예지동 오래된 시계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골목이 주는 정취 때문이다. 나란히 있는 ‘곰보냉면’(02-2267-6922)과 ‘옛날집’(02-2267-8497), 어디나 좋다.
“함흥냉면집에 가서 물냉면 찾지 않고, 평양냉면집에서 비빔냉면 찾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아무래도 전분으로 만드는 함흥냉면의 면이 쫄깃하니까 비벼 먹는 게 더 어울리지 않겠어. 메밀로 만드는 평양냉면 국수의 메밀 향을 즐기려면 진한 양념보다는 담백한 육수에 말아 먹는 게 더 맞지 싶은데. 사실 냉면집에 가면 물냉면·비빔냉면만 구분해 주문하지 국수가 메밀로 만들었는지, 전분으로 만들어졌는지 따져 보지 않잖아.”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쓴 세시풍속서『동국세시기』를 보면 ‘메밀국수에 잡채·배·밤·쇠고기·돼지고기·참기름·간장 등을 넣어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麵)이라고 한다’는 비빔국수가 등장하죠. 그러니까 메밀국수를 비벼 먹었다는 말이죠.”

“그거야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밀이 귀하니 국수 하면 메밀국수가 대표적이었지. 그래서 지금이야 냉면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그냥 ‘국수’라고 했잖아. 함경도 지방은 감자가 많이 나니 감자로 녹말을 만들었고 그 감자 전분으로 만든 것이 그곳에서는 ‘국수’였고. 매운 맛을 좋아하는 함경도 사람들의 식성이 매운 비빔국수를 낳은 거고.”

“어쨌든지 메밀국수도 녹말국수도 말아 먹거나 비벼 먹을 수 있다는 건가요?”
“허!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회냉면을 시키고 기다리면서 따뜻한 육수를 마시다가 궁금한 게 생겼다.
“왜 함흥냉면 집에서는 물 대신 육수를 내죠?”

갑자기 선배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감돈다.
“조선시대 말에 나온 요리책 『시의전서』 알지? 거기에 고춧가루를 넣은 비빔국수를 소개하는데, 상에 낼 때는 장국과 함께 놓는다고 쓰여 있지. 비빔밥에도 장국이 따르잖아. 비빔국수도 먹다 보면 국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게다가 매운 맛에 얼얼해진 입 안을 다스리기에도 좋고. 더 나아가면 국이 항상 올라가는 우리의 상차림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함흥냉면 집에 가면 식탁 위에 겨자·식초·양념장·설탕이 놓여 있는 게 일반적이다.
“비빔냉면도 겨자와 식초를 넣어 먹는 게 맞아. 양념이 더 필요하면 양념장도 넣고. 설탕은 아마도 함흥냉면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제공되었겠지.”

하지만 요즘 함흥냉면 맛이 전반적으로 너무 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뒤따르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데 ‘세끼미냉면’이 메뉴에 안 보이네요?”
“비빔냉면과 회냉면을 섞은 것. ‘섞임’의 이북 사투리잖아.”
“회냉면에 올라가는 생선회가 홍어잖아요. 홍어는 함흥 인근 바다에서는 잘 잡히지 않는 생선인데.”

“그것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변한 것이지. 가자미나 명태를 썼다고 하잖아. 지금도 속초에 가면 회냉면에 명태회를 얹어 주는 곳이 있지.”
때론 음식에서 ‘원조’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음식 역시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그때 그 맛’에 대한 기억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일한 조리법을 쓴다 하더라도 손맛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넌 요즘 진주냉면이나 부산밀면을 자주 맛보겠다.”
북한의 백과사전에도 ‘북에 평양냉면이 있다면 남에는 진주냉면이 있다’고 하는데, 진주냉면은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양냉면과 마찬가지로 경남 합천·의령 등지에서 즐겨 먹던 메밀국수가 진주냉면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쇠고기의 사태 또는 정강이 살을 푹 고아 기름을 건지고 육수와 해물장국을 배합해 육수를 만든다고 하는데, 쇠고기 육수만으로도 낸다. 부산밀면은 부산으로 피란 온 월남민이 메밀을 구할 수 없어 밀가루로 냉면을 만든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진주의 밀국수가 건너가 변형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지역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야, 잘됐다. 그럼 이번 여름엔 휴가 겸해서 냉면 기행이라도 해 볼까?”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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