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형 ‘벌집 구조 고시텔’ 화재 무방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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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5일 오전 1시25분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는 10층짜리 상가건물의 9층 ‘T고시텔’에서 불이 나 40분 만에 이영석(37)씨 등 7명이 숨졌다. 이철수(44)씨 등 11명은 화상을 입었다. 불은 발화 40분 만에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진화됐다. 고시텔에는 일용직 근로자 등 영세민과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피할 틈 없이 당했다=불이 난 9층(면적 559.9㎡)은 6.6㎡ 크기의 좁은 방 68개가 폭 1m가량의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집 구조다. 이 때문에 6호실이 전소되고 8호실 침대·복도 일부가 타는 비교적 작은 화재였는데도 6호실 등에서 뿜어져 나온 유독가스에 사상자들은 대피할 틈도 없이 변을 당했다.

발화 5분 만인 오전 1시31분쯤 소방관 20여 명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10명이 숨지거나 부상한 채로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발화 장소로 추정되는 6호실과 8호실은 고시텔의 중간 지점이며, 사망자들은 6호실과 10m 거리 내의 고시텔 안쪽 복도와 방안에서 대부분 질식사했다.

복잡한 내부구조와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화를 키웠다. 현장을 둘러 본 119구조대 관계자는 “복도의 폭이 좁고 미로형으로 돼 있는 데다 새벽이라 사상자들이 당황하며 대피하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방화 가능성 수사=고시텔 안에는 스프링클러도 없어 화를 키웠다. ‘고시원’으로 분류된 고시텔은 지하층이나 4층 이상 건물의 바닥면적이 1000㎡ 이상일 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나 사고가 난 고시원은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불이 날 당시 고시텔에는 사상자 외에 30여 명이 더 있었으나 제때 피해 화를 면했다. 상가건물의 1~8층과 10층은 병원 등으로 영업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없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빈 방 2곳에서 불이 난 점으로 미뤄 방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중국 조선족 동포 이철수(44)·철군(42)씨 형제는 한 방에서 잠을 자다 형은 숨지고 동생은 호흡기 부위에 중화상을 입어 생사가 엇갈렸다.

전익진 기자

◇사망자 명단 ▶이영석(37) ▶정찬영(26) ▶이철수(44) ▶강정혜(51·여) ▶김병근(47) ▶이병철(38) ▶권순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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