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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화제>동물의 섹스기능 위축 원인은 독성화학물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 몇년동안 학계에서는 동물들의 섹스활동이 예전같지 않다는연구보고서가 연이어 발표돼 충격을 던졌다.미국의 한 오염된 호수에 서식하는 숫악어의 생식기가 엄청나게 작아졌다는 보고에 이어 숫갈매기가 암컷을 봐도 시큰둥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급기야 지난 92년에는 남자의 정자수가 50년 사이 반으로 감소했다는 연구보고서까지 나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생태계의 섹스행태를 흐트러뜨려놓은주범이 바로 독성 화학물질이라는 연구결과를 담은 책 『도둑맞은우리의 미래』(Our Stolen Future)가 나와 학계와경제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이 책에는 역학(疫學).독물학(毒物學) 등 전문 연구분야뿐 아니라 건강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기업인들의 경영마인드까지흔들어놓을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발간되자마자 미국의 학계와 재계에서는 즉각 이 책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미국과학아카데미도 급히 회의를 소집,이 책의 연구결과를 검토하기로 결정한것으로 미뤄볼 때 책의 내용이 상당히 신빙성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앨 고어 미국부통령이 썼고 홍보는 89년 사과에 사용되는 알라(Alar)라는 물질의 유독성을 놓고 국제적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환경주의자 데이비드 펜턴이 맡고 있다.이미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비즈니스 위크.뉴스 위크 등 미국의굵직한 매체들은 이 책을 62년 발표된 환경고전 『침묵의 봄』(Silent Spring.레이철 카슨 지음)에 버금가는 것으로 판단하고 크게 다뤘다.
동물학자인 존 피터슨 마이어스.테오 콜본과 저널리스트 다이앤듀마노스키 등 3명이 쓴 『도둑맞은 우리의 미래』는 사건을 추적해 들어가는 수사기사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은 추적 연구대상이 된 생태계의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만하다.먼저 미국 플로리다주의 아포프카 호수에서 제초제가 방류되는 사고가 일어난 뒤 숫악어들의 생식기 크기가 반으로작아졌던 원인이 규명된다.
또 DDT를 먹인 쥐의 생식기 모양이 기형으로 변했던 실험결과와 그레이트 레이크스에서 제초제에 노출됐던 수컷 조류와 어류가 번식하지 못했던 사례 등이 다뤄진다.이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과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 초점을 맞춰 화 학 물질이 인간 호르몬의 정상적인 활동까지 흐트러뜨려놓고 있음이 밝혀진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독성 화학물질이 암을 유발할뿐 아니라 생물의 호르몬체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의심을 품으면서도 확증을 잡는데는 실패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다이옥신.DDT.PCB(폴리염화비페닐),또 제초제.살균제.살충제.세제 등에 사용되는 여러 화학물질이 인간의 호르몬이 자리잡고 있는 세포에도 침투하는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한다.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간과 야 생동식물은 그야말로 살충제의 「융단폭격」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미국과학아카데미에서 이들의 주장을 사실로 확인할 경우 우리 인간의 생활방식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책의 주장에 대한 평가를 끝내려면 3~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을 듯하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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