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은 국정운영 기본조차 잊어버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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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72석이라는 가죽 외투를 걸치기에 한나라당의 사지(四肢)는 너무 허약한 것 같다. 1990년 민자당 이래 근 20년 만에 등장한 거대 여당인데 당의 행보는 소수당보다 못하다. 얄팍한 ‘한 건’주의가 만연하고 정책은 마구잡이로 튄다. 정권이 어려운데도 당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있다. 청와대에다 국정의 다른 축마저 이러니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대북특사’는 소동의 압권이다. 박희태 대표가 특사를 건의할 거라고 대변인이 발표하자 ‘박근혜 특사’설이 돌았다. 대통령이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대표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다. 가해자(북한)는 침묵하는데 피해자가 특사 운운한 것도 그렇거니와, 대북특사 같은 중요 사안을 청와대와 상의 없이 당이 불쑥 꺼냈다는 것도 문제다. 대표의 번복이든 대변인의 실수든 소동은 당의 현주소다. 앞서 당 출신 김형오 국회의장은 남북 국회회담을, 홍준표 원내대표는 남북 정치회담을 제의했다. 남북 분위기와도 맞지 않는 데다 여야 협의도 없는 돌출행동이었다. 당정회의에선 ‘총을 쏜 초병은 17세 여군’이라는 설익은 첩보가 버젓이 터져나왔다.

당은 도무지 원칙이나 사려 깊음이 없다. 원내대표는 선진당의 눈치를 보느라 원내교섭단체 조건(20석 이상)을 완화해주려 했다. 쇠고기 파동 때 정부는 재협상의 부작용 때문에 추가협상을 고수했는데 당은 촛불시위에 눌려 무책임하게 재협상을 외쳤다. 며칠 전 당의 제1정조위원장은 정당이 등원을 거부하면 정당보조금을 삭감하고, 본회의장과 의장석을 점거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등원 거부는 야당일 때 한나라당도 구사하던 투쟁방법이었다. 그리고 점거는 수십 명이 할 터인데 의원 수십 명을 기소하겠다는 말인가. 현행법에 있는 경위권을 발동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부작용과 여론을 고려하지 않은 즉흥적 발상이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다 보니 ‘국정 운영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설익거나 이상한 얘기가 튀어나온다. 이래서야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들이 뭘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