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해뜰 무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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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상률(1958~) '해뜰 무렵' 전문

저기
한 남자가 쟁기질을 합니다

저기
한 여자가 호미질을 합니다

그리고
밭에는 곡식들이 자랐습니다



곡식들이 지평 위에 푸른 어깨를 넘실거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곡식과 더불어 인간은 사랑과 지혜, 예술과 혁명의 꿈을 이 지상 위에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들판에서 한 남자가 쟁기질하는 모습, 한 여자가 호미질하는 모습은 우리 삶의 근원적인 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좋은 세상, 아름다운 시간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고 싶은 길들, 힘든 이웃들과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우리가 우리의 힘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의 꿈…. 오늘은 특별한 날, 보기좋은 호미질과 쟁기질로 해뜨는 아침을 맞자. 누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가 아닌, 우리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마음으로 한 표를 행사하자.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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