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과서를 바꾼 책 국내선 절판돼 아쉬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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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15면

“4세기에 들어오자 야마토 정권의 세력은 조선반도에 진출하여 아직 소국가군 상태에 있었던 변한을 영토로 하고 이곳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392년에는 또다시 군대를 보내어 백제·신라도 복속시켰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이에나가 사부로(1913~2002) 전 도쿄교육대 교수가 1973년 낸 고교용 교과서 『신일본사(新日本史)』에 실려 있던 내용입니다. 그러나 4년 후 개정판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체됐습니다.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정확한 독법이라든지, 거기서 어떤 사실을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최근 학계에서 견해가 갈리고 있다.”

이진희 교수의 『광개토왕릉비의 연구』가 큰 파장을 일으키자 이에나가 교수가 관련 대목을 수정한 것입니다. 이에나가 교수는 『신일본사』가 일본의 전쟁범죄 등에 관한 내용을 기술했다는 이유로 문부성 검정에서 불합격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30년 넘게 이어진 법정 싸움을 통해 사회적 각성을 일으켰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두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임나일본부설은 현재 가장 극우 성향인 후쇼샤 교과서 말고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진희 교수의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이에나가 같은 양심적인 학자마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임나일본부설이 지금도 일본 교과서에 실려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광개토왕릉비의 연구』는 현재 국내에서 절판돼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찾는 이가 없었던 탓 아닐까 싶은데요. 독도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