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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계좌의 악몽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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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28면

1990년대 주식시장을 돌아보면 ‘깡통계좌’의 슬픈 역사가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대망의 ‘1000 포인트’ 고지를 점령했던 코스피지수는 기쁨도 잠시, 90년대 들어서면서 4개월 만에 30% 넘게 급락했다. 당시 주식 투자는 미수거래와 신용거래가 습관처럼 퍼져 있었다. 그러나 증시는 개인 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아서 주가가 한번 떨어지면 받쳐줄 원군이 없었다. 특히 미수·신용거래로 샀던 주식이 떨어져 주식을 전부 팔아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깡통계좌가 속출했다. 그런데 최근에도 깡통계좌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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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모(42·서울)씨는 며칠 전 증권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식계좌가 담보부족 상태라 추가로 자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반대매매가 나간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지난달 코스피지수가 1700포인트 근처에 머물자 단기저점이라는 확신으로 5000만원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익히 알던 대형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이라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욕심이 과한 게 화근이었다. 강씨는 단기 고수익을 노리고 신용융자 5000만원을 보태 1억원어치의 주식을 매수했다. 5000만원은 증권사에서 빌렸다. 상환 기간이 3개월이라 그 사이 주가가 상승하면 매도해서 바로 빚을 갚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강씨가 샀던 우량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생각지도 못했던 담보 부족으로 반대매매를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신용융자 담보 비율은 통상 140% 정도다. 강씨는 5000만원을 빌렸으니 계좌 평가액이 7000만원(5000만원×1.4) 이상이어야 담보 부족을 면할 수 있다. 즉 최초 매수가격보다 주가가 30% 정도만 떨어져도 강제로 반대매매를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반대매매를 당하면 계좌에 남는 돈은 2000만원 정도에 그친다.

부자들 중에는 때로 과감하게 빚을 내서 투자해 성공한 사례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주식은 예외인 것 같다. 필자가 주식 투자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포켓머니(Pocket Money) 법칙’이다. 잃어도 되는 여윳돈으로 주식을 사라는 얘기다. 지금처럼 혼란기 시장에서는 더욱 지켜야 할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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