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대보름 축제'와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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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자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치러온 세시풍속 관련 행사는 전국적으로 약 1백90건에이른다.그 가운데 음력 정월의 행사가 가장 풍성하고 다채롭다.
한 민속학자는 1백89건의 연중 세시풍속 행사 가운데 정월의 행사가 78건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고,또 다른 학자는 연중행사1백92건중 정월행사는 절반이 훨씬 넘는 1백2건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월의 행사 가운데서도 대보름날 하루의 행사가 압도적이다.78건 학설을 내놓은 학자는 그중 40여건이,1백92건 학설을 편 학자는 그중 1백2건이 대보름 행사라는 것이다.한햇동안 벌어지는 전체행사의 23~24%와 53%가 대보름날 에 몰려있는셈이니 행사로만 따지면 설날이나 한가위를 훨씬 앞지르는 셈이다.이처럼 정월 대보름에 축제 등의 행사가 집중돼 있는 까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사회는 새해 첫 보름달을 무엇보다 중시했기 때문이 다.
대보름 행사는 지방마다 가정마다 다소 다르지만 「부럼(腫果)먹기」「더위 팔기」「귀밝이술 마시기」등 가정 단위의 습속 이외에도 여럿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놀이들도 많다.논밭의 잡귀를쫓아내기 위한 어린이들의 「쥐불놀이」,마을 대항 전 성격을 띤「돌싸움(石戰)」,한햇동안 튼튼한 다리가 돼달라고 기원하는 「다리밟기(踏橋)」따위가 그것이다.그같은 행사들중 상당수는 현대화에 밀려 자취를 감췄지만 아직도 지방에 따라서는 주민축제 형식으로 변형한 대보름 행사를 치르는 곳들이 적지 않다.인천시 동구청이 주민화합을 위해 90년부터 대보름때마다 열어온 「화도진 축제」도 그중의 하나다.한데 올해에는 이 대보름 행사를 여는데 걸림돌이 등장했다.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정기관 주도의 모든 행사를 금지토록 한 중앙선관위의 방침에 따라 지역 선관위가행사 취소를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주최측의 의도가 개재돼 있다면 선관위의 개입은 당연하다.하지만 『막연한 개연성 때문에7년째 계속되는 문화예술 행사조차 불허하는 것은 입법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면 선관위의 태도 가 오히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대보름 행사까지 법을 따져야 하는오늘의 세태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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