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치자금 댄 한국계기업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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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계 기업들에 대한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연방조세국(IRS)의 무더기 조사로 이들 기업의 미국내 기업활동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대상기업들은 이미지 실추등으로 인한 부담이 지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백50여개 기업 가운데 과연 몇개 기업이 추징금을 부과받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삼성이나 현대같은 한국의 간판급 기업들이 이미 정치자금 불법제공 사실을 시인하고 추징금을 낸 사실에 비추어 상당수 기업들이 추징금을 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예컨대 이들 기업의 추징금 총액이 4천만달러에 달한다고 칠 때 그 후유증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미국내 한국기업의 평균수익률 2%를 고려하면 20억달러어치 물건을 팔아 챙긴 수익을 고스란히 미정부에 벌금으로 갖다바쳐야 할 판이다.한 국계 정치인을 돕자는 선의에서 기부행위에 나섰던 기업들로서는 허망한 꼴이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번 사단이 근본적으론 미국 법제도에 대한 한국기업들의 무지와 회계처리 미숙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미선거법에 의하면 개인은 1인당 1백달러(당원은 1백50달러)까지 정치인에게 직접기부할 수 있다.물론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의 경우다.그러나 모 현지법인의 경우 현지채용인 명의로 기부한도를 훨씬 넘는 수천달러를 김창준(金昌準)의원에게 기부했는가 하면 또 어떤 기업은 아예 현지에 파견된 임직원 명의로 기부한사례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하나는 회계처리 미숙이다.기업이 개인의 이름을 빌려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사례는 미국기업들도 흔히 하는 일이지만 미기업들은 교묘한 장부처리로 법망을 피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문제가된 모기업의 경우 직원이 개인수표를 끊어 2천달 러를 김의원에게 기부한케 한뒤 기업이 같은 금액을 특별수당 명목으로 한꺼번에 지급,누가보더라도 2천달러의 기업자금이 개인을 통해 정치자금으로 나간 게 명백하게 장부처리를 했다.이렇게 되면 기업공금유용혐의를 벗어날 수 없으며 IRS 의 추적은 당연하다는 얘기다.그러나 미기업들은 각종 명목을 붙여 여러차례로 나누어 지급함으로써 교묘히 법망을 빠져 나가고 있다.
외무부는 난감한 입장이다.딱하기는 하지만 법을 어긴게 명백하고,미국 국내문제라 간섭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이제 국내기업들이 법을 어기더라도 적당주의와 온정주의가 통한다는 한국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이룰 때라 는 지적이다.이번 일을 값비싼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외무부 당국자의 말이다.현지변호사를 최대한 활용,현지법에 대한 무지에서 빚어진 일임을 설명하고 정상 참작을 호소하는 도리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전망이다.
민병관.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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