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의 문민정부 3년-집권 3년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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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집권3년은 격변의 연속이었다.재산공개파동에서부터 두 전직대통령 구속에 이르기까지 사정과 개혁의 바람이 그치지 않았으며 굵직굵직한 조치와 발표가 이어졌다.대형사건.사고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집권1차연도인 93년은 「사정과 부정부패의 척결」,2차연도와3차연도 전반기는「국제화.세계화」,3차연도 말부터는「역사 바로세우기」가 국정의 목표였다.
취임하자마자 『임기중 돈 한푼 안받겠다』고 충격선언을 한 金대통령은 자신의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이끌어냈다.재산공개파동으로 당시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과 김덕주(金德柱)대법원장,박종철(朴鍾喆)검찰총장 이 자리를 떠나야했다.
군내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정하고 금융실명제.부동산 실명제를단행하는 결단을 보였고 통합선거법 제정을 유도,정치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교육개혁.사법개혁조치를 발표하고 공직사회의 반발을무릅쓰고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했다.
金대통령 재임3년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현정권은 이를 「개혁」이라 부른다.정치적으로는 「기득권 세력의 와해」또는「새로운 집권세력의 형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냇물이 바다를 향해 치닫듯 金대통령의 개혁정책과 인사는 한결같이 이 목표를 향해있다.
정치적으로는 재산공개 파동을 거치면서 떨어지기 시작한 민정계의 도덕성은 盧씨 사건으로 완전히 추락했다.이제 신한국당에는 金대통령의 손때가 묻은 지구당위원장이 다수를 차지한다.
金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으면서 부패구조를 단절하고 군내부의 하나회를 뿌리뽑은 것은 金대통령의 말처럼 『문민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개혁』에 속한다.선거에서 여당의 프리미엄인 돈과 조직을 포기한 것도 획기적이다.
다만 3당합당으로 집권한 태생적 한계때문에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그결과 총론적인 지지속에서도 저항세력을 양산해야 하는 모순에 시달렸다.개혁방법론상의 문제는 신권위주의 논쟁을 야기했다.
이제 金대통령은 3년동안의 치적에 대해 국민들에게 어느쪽에 표를 던질 것인지 물어야 하는 총선을 앞에 놓고 있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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