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만 강조한 MB 실용외교 ‘독도 뒤통수’ 맞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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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 는 최대 위기에 빠졌다.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한·미 동맹 복원이 쇠고기 파동이란 암초를 만나 휘청거린 데 이어 한·일 관계마저 급속히 냉각될 조짐이다. 남북 관계 역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얼어붙고 있다.

◇설득외교 왜 실패했나=정부는 일본의 해설서 개정 움직임이 5월 18일 일본 언론의 보도로 알려진 뒤부터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전방위 설득 외교를 펼쳤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가장 큰 원인은 신뢰의 부재다. 이명박 정부는 한·일 관계 복원을 주요 외교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공약과 달리 정권 출범 후 인사·공천 파문에 휩싸여 주일 대사 임명을 두 달 가까이 지연시키는 실책을 범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상의 방한이 취임 10개월째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서로 관계 복원의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점들이 겹쳐 이명박 정부가 한·일 관계에선 실천보다 말이 앞섰다는 여론의 비판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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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과 인맥의 부재=효율적인 전략을 구사했는지도 의문이다. 가령 사실 관계의 공식 확인 없이 언론보도만으로 주한 대사 초치란 강수를 둔 건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어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당시 성급한 조치로 인해 한국이 해설서 개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 광고하는 결과가 됐다”며 “그런 사실이 일본 국내에 보도되면서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한국의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는 강경 여론이 득세할 여지를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을 해결할 물밑 채널이 사라진 아쉬움도 크다. 전통적으로 한·일 간에는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거물급 정치인 간의 비공식 채널을 통해 해결한 전례가 있다. 김종필·박태준 전 총리 등이 그런 역할을 한 대표적인 지일파 인맥의 거물이다. 10년 만의 보수정권 출범으로 이 같은 비공식 채널을 복원할 여지가 생겼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정계 실력자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만났지만 역부족이었다.

◇MB 실용외교 최대 위기=이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세계 어느 나라라도 직접 달려가겠다는 실용외교를 내세우며 미국·일본·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 이후 나타난 대외 관계의 난맥상을 보면 성급함이 앞선 나머지 현안 점검과 전략 수립에 치밀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쇠고기 파동’에 휘말린 한·미 관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답방 일정조차 연기해야 할 만큼 타격을 받았고, 7월에 발표키로 합의했던 한·미 간 ‘21세기 전략적 동맹관계 선언’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 이 대통령은 중국 대지진 현장까지 찾는 성의를 보였지만 한·미·일 공조 강화를 탐탁지 않게 보는 중국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남북 관계와 국제 관계를 긴밀히 조율하겠다던 대북정책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휘말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조지워싱턴대 김영진(국제정치) 교수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돼 창의적인 외교 정책을 개발하고 현안을 긴밀히 조율해야 하는데 현 정부에선 그런 기능이 취약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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