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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 얽힌 ‘이야기’ 풀어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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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주시 교통·풍남동은 한 해에 117만여 명(외국인 5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전국 최대의 한옥마을이다. 방문객들은 조선 이태조의 어진을 보관한 경기전과 공예품전시관·술박물관·전통문화센터·한옥생활체험관 등을 주로 찾는다.

그러나 이곳의 진짜 보물은 1920~30년 대 지어진 한옥들. 700~800여 채의 고택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전주시가 전북대와 손잡고 한옥마을에 이야기를 입히는 ‘스토리 발굴’작업에 발벗고 나섰다. 한옥마을의 정책을 건물·도로 중심에서 사람·콘텐츠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다.

전북대 BK21사업단(단장 함한희 교수)은 지난 5개월 간 한옥마을을 집집마다 찾아가 주인들을 만나고 현지 조사를 했다. 지난 12일에는 최명희 문학관에서 ‘한옥마을 사람들의 희망과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그동안 수집한 사연을 풀어 놨다.

은행나무길에 있는 동학혁명기념관 맞은편의 ‘동락원’은 본래 주인이 아들의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정집이었으나 규모가 커 관리가 힘들어 1950년 대부터 한국은행 관사로 사용하다 기전여대가 개교 30주변을 맞아 매입했다. 솟을대문과 행랑채·사랑채·안채 등이 전통 한옥의 운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외지인 숙박객을 맞아 한옥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오교장 댁’은 몇채 안되는 ㄱ자 집이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 말기 궁녀가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지었다고 해서 ‘궁녀 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닫이·여닫이 등 문이 무려 49개나 되는 ‘문이 많은 집’의 사연도 흥미롭다. 진안에 살던 천석꾼 한씨가 자녀 교육을 위해 지은 집이라고 한다. 문이 너무 많아 명절이 다가오면 문짝들을 떼어 천변에 갖고 가서 씻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4대를 이이 온 교동 선비 집’은 당초 1000㎡의 넓은 터에 안채·사랑채·행랑채·앞뜰·뒤뜰을 고루 갖춘 반가형 주택이었다.

한시·글씨에 조예가 깊었던 한학자가 살아 선비들이 함께 모여 강학을 하고 시를 지어 교유하던 곳이었다. 주인이 바둑 고수였던 까닭에 조남철·이강일·정동식씨 등 지역출신의 바둑 명인들이 사랑채를 거쳐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물 좋은 인생복덕방’은 70여 년의 세월을 지켜낸 아담한 한옥이다. 마당에 우물이 있는데, 어머니가 이 우물 물로 콩나물을 길러 자식들을 대학까지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이날 토론회서는 한벽당∼이목대∼항교∼아석재 등을 연결해 ‘호남 삼재(三齋)’의 선비정신을 되살리자는 주장도 나왔다. 삼재는 금재(최병심), 고재(이병은), 유재(송기면) 등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들로 전주 교동에 자리를 잡고 후학을 지도했다.

전주시와 전북대는 이들 한옥마을 토박이들의 이야기를 사진·CD 등으로 펴 냈다. 또 집집마다 간직한 사연을 담아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마을·집 등 건물에 사람·역사가 들어가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고 생동감 넘치는 볼거리가 된다”며 “한옥마을에 생활문화 콘텐 츠를 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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