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짜로 첨단빌딩 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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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중구 저동 네거리의 지상 3층짜리 옛 남대문세무서 건물이 ‘나라키움 저동빌딩’이란 이름의 15층짜리 첨단 빌딩(사진)으로 재탄생했다. 2006년 착공해 14일 준공된 이 빌딩엔 모두 431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토지 소유주인 정부는 예산 한 푼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국유재산이 크게 불어났다. 신축 비용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민간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임대료(연간 54억원)로 충당된다. 신축 전 267억원에 불과했던 재산가액은 현재 1630억원(인근 시세 기준)으로 여섯 배가량 불어났다.

이처럼 정부가 예산 한 푼 없이 국유지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도입한 ‘국유지 위탁개발 사업’ 덕분이다. 이는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기업이 국가로부터 위탁 받은 국유지에 건물 등을 신축해 임대한 후 그 수익을 국가에 돌려주는 개발 방식으로 남대문세무서 신축은 ‘시범사업 제1호’다.

5개 층을 남대문세무서와 서울지방국세청이 사용한다. 정부 입장에선 공짜로 깨끗한 사무실을 얻은 셈이다. 태양광·지열 발전시스템을 갖춰 에너지 사용을 20% 이상 절약한 것도 이 빌딩의 자랑이다.

기획재정부 정병기 과장은 “이번 사업은 국유지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새로운 개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 전까지 개발은 난항을 겪어왔다. 서울시가 토지의 상당 부분을 공원용지로 지정한 데다 일부 땅을 무단 점유한 민간인과는 법정 다툼까지 빚어졌다. 게다가 1급 상업지인데도 정부가 직접 건물을 신축할 경우 수지가 맞지 않았다.

캠코의 이치호 팀장은 “위탁 개발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상당기간 개발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헐린 옛 남대문세무서는 조선시대 무기고 터였다. 그러다 일본 총독부는 80년 전인 1928년 건물을 지어 헌병대 사령부를 뒀다. 동국대 법학과 박민영 교수는 “지하엔 고문실이 있어 많은 애국지사가 고초를 겪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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