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초소 1~2 곳 더 있는데 제지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치마를 입은 53세의 여성이 20여 분간 백사장 3.3㎞를 이동하다가 북측 초병의 총탄에 맞고 숨졌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발표를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은 13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사건이 전개된 시간과 이동 거리를 종합할 때 북측의 발표를 100%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고(故) 박왕자씨는 숙소인 비치호텔을 11일 오전 4시30분에 나섰다. 북측은 박씨의 사망 시각을 오전 4시50분이라고 밝혔다. 20분간 박씨는 비치호텔~해수욕장 입구까지 706m, 해수욕장 입구~군사통제구역 기점인 펜스까지 428m, 펜스~기생바위 근처까지 1200m를 이동했다. 초병이 박씨를 발견한 뒤 제지했으나 응하지 않고 달아나 펜스 200m 앞 지점에서 총격을 가했다는 북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씨는 온 길을 거슬러 1000m를 달아난 셈이다. 이를 종합하면 20분간 3300m가 넘는 거리를 오간 것이 된다. 평균 시속 9.9㎞의 속도로 백사장을 이동한 셈이다. 김 대변인은 “박씨가 산책 삼아 근처를 오갔을 것이라는 점과 장소가 백사장이라는 점, 치마를 입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북측 설명을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인 남녀의 평균 걸음걸이 속도는 시간당 4㎞ 정도다.

또 박씨가 이동하는 동안 북측 초소가 기생바위 근처에 하나밖에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사건 당일은 박씨가 거닐었던 해수욕장이 개장한 지 이틀째 되는 날로 북한의 경계가 삼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그 구간에 초소가 2~3개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가 군사통제구역을 이탈하는 것을 북측이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아산 측이 통일부에 보고하기까지 걸린 두 시간도 명확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금강산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정부에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대아산 측은 오전 9시20분쯤 북측으로부터 통보받고 2시간10분이 지난 시점에야 통일부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 측은 “현장에서 종합적인 사고 파악을 마친 뒤 본사에 문서로 보고하게 돼 있다. 현지에서 본사로 보고가 올라온 시점이 오전 11시쯤”이라고 주장했다.

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