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사연은 우리들의 얘기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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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03면

지난주(6일) 본지 1면과 6, 7면에 실린 ‘2008년 7월 위기의 중산층, 전 동화은행 지점장 김병철씨 육성리포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난을 힘겹게 헤쳐 온 가장의 얘기를 읽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 전직 의원이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집에 찾아온 박승 전 한은 총재 등과 중산층 붕괴 문제를 우려했다고 한다. 한 기업체 임원은 “마치 내 얘기 같았다. 회사에서 기사를 읽은 뒤 집에 가져가 아내와 함께 다시 찬찬히 훑었다”고 말했다.

‘김병철씨 육성리포트’ 잔잔한 파장

김씨의 진솔한 고백은 가뜩이나 울고 싶은 2008년 7월 대한민국 중산층들의 뺨을 때린 격이었다. 아이 한 명의 한 달 교육비 100만원, 휘발유 1L에 2000원, 수년째 제자리인 월급, 청년 실업 등 그렇지 않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나라는 혼란스럽기만 하니까 더욱 그렇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인 7일 김씨의 장남 성룡(공중보건의)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 보건소의 진료실이라고 했다. 환자 중 한 명이 “이거 소장님 가족 얘기 아니냐”며 가져온 본지를 보고 놀라 전화를 했단다. 기자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한 가족의 얘기를 낱낱이 까발리면 어떡하느냐’는 항의였다.

곤혹스러웠다. 사실 이런 기사의 취재원을 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2008년 7월을 힘겹게 살아가는 중산층은 많지만, ‘내 얘기를 풀어 놓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씨는 자신의 얘기도 실명도 사진도 허락했다. 하지만 신문이 나오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1면과 6, 7면 가득 부부 사진과 가족 얘기가 너무도 자세히 실렸기 때문이다. 성룡씨는 기자와 통화를 한 7일 저녁 인터넷 미니홈피에 “우리 가정의 이야기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완전한 나체로 만들어 기사화한 것은 무척 기분 나빴다”며 “기자는 글 속의 등장인물이 겪을 스트레스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적어놓았다.

기사의 힘은 ‘리얼리티(reality)’에서 나온다. ‘경기도 신도시에 사는 A씨의 역경 스토리’는 그럴싸한 소설로 다가올 뿐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물론 그 ‘리얼리티’는 때로 취재원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기자는 항상 취재원과 독자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김씨 가족의 마음가짐이다. 다음은 성룡씨가 미니홈피에 남긴 글 중 일부분이다. “(기사가 나가고 나서) 가족끼리 서로 연락하면서 함께 울면서 함께 웃으면서 참 기분이 좋아졌다. 뭐랄까…엄청나게 마음이 따뜻해졌고 엄청나게 행복해졌다~^^. 동생 하고 결심했다. 나중에 정말 잘 되어서 그 기사의 반전 기사가 날 수 있도록 하자고…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공을 꼭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가족…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나 감사하다.”

지난주 기사는 취재원은 물론, 독자들과 심지어 취재기자에게도 카타르시스가 된 셈이다. 누구라도 드러내기 주저하는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은 김병철씨와 그 가족에게 지면을 빌려 다시 미안함과 함께 독자들을 대신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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