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전반기에 못해내면 이 정부에서 개헌 힘들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학계의 개헌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국회에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번엔 학계가 나섰다. 9일 하루 동안 개헌을 화두로 한 좌담회와 강연이 동시에 열렸다.

사단법인 미래전략연구원은 이날 ‘개헌의 내용과 절차에 대한 검토’를 주제로 세 명의 학자를 초빙해 좌담회를 열고 개헌 관련 이슈를 점검했다. 중앙대 손병권 교수의 사회로 전주대 이강로·서강대 임지봉·경북대 하세헌 교수가 토론에 나섰다.

하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진단한 뒤 근본 원인으로 ‘5년 단임제 권력 구조’를 들었다. 그는 “승자 독식인 대통령제는 ‘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극단적 투쟁과 반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도 대통령제하에선 심화된다”고 강조했다. 정치 발전을 위해선 내각책임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 교수는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원할 때 개헌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개헌을 하게 되면 기본권 규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의 핵심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인데 현재까지의 개헌은 정치권의 현실적 이익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며 “국민과 시민사회의 의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교수는 ‘개헌 불가론’을 주장했다. “20년간의 정치적 실패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운영하는 이들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국민이 현행 대통령제가 친숙한 상황이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 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래전략연구원과 별도로 서울대 성낙인(법학) 교수는 이날 법제처가 개최한 ‘제헌 60주년과 민주법치국가의 건설’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개헌론을 폈다.

성 교수는 “임기 전반기에 개헌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정부에서 개헌은 힘들다”며 조기 개헌론을 강조했다. 성 교수는 미래한국헌법연구회에도 고문으로 참여하며 개헌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제에 익숙한 정치적 환경을 감안해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50년 이상 국무총리가 있어온 만큼 대통령은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정립하는 큰 정치를 해야 하고, 총리는 일상적인 내각의 일을 해야 한다”는 역할 분담론도 곁들였다. 그는 또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려는 과정에서 불행한 역사가 시작됐다”며 “개헌은 권력 분점을 이룰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