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선거 단속 정보 새나가나…감시단 '위장 취업'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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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선거관리위원회 앞. 선거부정 감시원 K씨가 모 정당의 추천으로 감시단에 합류한 金모씨와 함께 차에 올랐다. 이 지역의 불법선거운동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조금 후 선관위에서 "송파병 지역 하나은행 앞의 불법 선거운동을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현장으로 향하던 중 金씨는 느닷없이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급히 차를 세웠다.

金씨는 선관위의 지시사항이 있을 때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며 중간에 차를 멈추게 하곤 했다. 이를 의심한 K씨는 이날 金씨의 뒤를 밟았다. 金씨가 전화에 대고 누군가에게 선관위의 지시내용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이날 K씨 일행은 가는 곳마다 허탕쳤다.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각 지역 선관위가 정당이 추천한 선거부정 감시단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정선거감시단은 선거구별로 50명으로 구성돼 지역을 순회하거나 각 후보 진영에 상주하면서 금품.향응 제공 등을 단속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 중 25명은 일반 시민이며, 나머지 25명은 정당 추천 인사로 구성돼 있다. 각 정당이 같은 수를 추천해 서로의 부정행위를 감시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일부 정당 추천 감시단원들은 후보자 부정에 대한 감시보다 선관위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신을 추천한 정당 후보 측에 보고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대구 중남구 선관위는 모 후보 측이 불법 홍보물을 제작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직원들을 현장에 급파했다.

정당 관계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단속반에게 "오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무슨 일이냐"며 시치미를 뗐다. 물론 홍보물은 온데간데없었다.

서울 송파구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첩보를 모은 보고서를 훔쳐보다 끌려나간 감시단원도 있다"며 "선거부정을 감시하는 건지, 부추기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며 애로를 털어놓았다. 20년째 자원봉사로 부정선거감시를 해온 文모씨는 "최근엔 정보 유출 대가가 200만~300만원대라는 말도 있다"며 "정당 추천 인사 중 절반 가까이가 이런 이중 첩보활동을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각 선관위는 이들 '첩자 감시단원'에게 중요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 한 선관위는 매일 작성하던 감시단원들의 일지를 없애고 구두보고로 대체했다. 부산 부산진구의 경우 감시단원 교육은 일반적인 사례들을 모아 형식적으로 하는 대신 직원들로 구성된 '기동반'에게 실질적인 단속을 전담시키고 있다.

임장혁.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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