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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잘 쉬는 것도 경쟁력 … 다양한 ‘휴테크’ 즐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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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휴가의 역사=휴가를 뜻하는 ‘바캉스(vacance)’는 프랑스어다. 라틴어로 ‘빈자리’나 ‘공허함’을 뜻하는 ‘바누스(vanus)’,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하는 ‘바카티오(vacatio)’가 어원이다. 바캉스가 널리 퍼지게 된 건 근대 이후다. 중세 종교개혁 이후 노동의 가치를 떠받드는 정서와 산업화로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게 된 근로자들이 노동시간 단축과 휴가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노동조합은 오랜 투쟁 끝에 단체교섭을 통해 연차유급휴가제도를 얻게 됐고 1936년에는 유급휴가에 관한 협약(국제노동기구 협약 52호)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연차유급휴가가 법으로 보장됐다.

◇외국의 휴가제도=휴가제도가 잘 갖춰진 곳은 아무래도 서유럽 국가다. 지난 4월 미국 해리스인터액티브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연간 휴가 일수는 37일로 유럽에서 가장 많았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는 33일, 독일은 27일, 영국은 26일로 나타났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석호 교수(레저경영연구원장)는 “영국에선 여름 2주, 크리스마스 1주, 부활절 1주를 쉰다”며 “선진국에서 휴가문화가 발달한 것은 휴가권을 기본권으로 인식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휴가의 천국이라 할 만한 나라는 네덜란드. 연간 휴가일수가 28일 정도인데 총급여의 8% 이상을 휴가급여로 주도록 아예 노동법에 명시해 놓았다. 가족을 보살피기 위한 ‘단기 보살핌 휴가’를 매년 최고 10일간 보장하고 ‘입양 휴가’도 최고 4주간 준다.

미국 기업들 가운데는 직장인들이 휴가를 함께 나누는 곳도 많다. 동료애를 진작하기 위해 병가를 많이 쓰는 동료를 위해 자신의 휴가를 대신 쓰도록 기부하는 ‘휴가 기부제’, 휴가를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 한꺼번에 쓸 수 있는 ‘휴가 은행제’를 운영하는 곳도 많다.

◇기업들 휴테크 도입=명지대 김정운 (여가경영학)교수는 “인간은 본래 놀이를 즐기고 재미를 추구하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라며 “재미와 창조성은 동의어로, 이는 창조경영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식이 기업에 퍼지면서 ‘휴(休)테크’란 개념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도록 휴가를 2개월까지 보장하는 아이디어 휴가제, 야외작업이 어려운 한여름에 휴가를 몰아쓰는 집중휴가제 등을 주는 기업들도 잇따라 생겼다.

◇한국 휴가문화의 현주소=문화체육관광부의 ‘2007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만 20∼60세 남녀 응답자 2527명 중 849명(33.6%)이 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정운 교수는 “여가나 가족보다 일을 우선하는 문화적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말8초 휴가’도 문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윤소영 여가연구센터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휴가 4계절 나눠가기’(휴가분산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자녀의 여름방학과 혹서기가 겹치는 7월 말과 8월 초에 휴가를 집중적으로 가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여러 모로 손해”라고 지적했다. 최석호 교수는 “일본은 휴가분산제가 실패한 후 징검다리 연휴를 쉬는 골든위크제를 도입했다”며 “매년 5월에 일본인들의 해외관광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명절을 음력으로 쇠는 데다 법정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쉬지 못한다”며 “여가시간총량제를 도입해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휴가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가족 단위 휴가 프로그램과 개인이 즐길 수 있는 취미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렇게 휴가문화를 육성할 경우 산업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나라의 여가산업 규모가 2005년 현재 GDP의 28.78%인 232조원에 이르는 상황이므로 사회적으로 휴가제도와 여가 프로그램을 제대로 접목하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길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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