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하코네는 해발 1천를 넘는 높은 산들로 빽빽이 에워싸여 있다.그 중 고마가다케(駒岳)기슭은 하코네진자(箱根神社)의 영역이다. 「진자(じんじゃ)」란 우리나라 성황당을 크고 장엄하게 지어놓은 것 같은 신당인데,하코네진자는 고구려계 성황당으로 보아지고 있다.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사람들은 다투어 왜(倭)땅으로 몰려갔다.불교와 한자,직조.재봉등 갖가지 문화와 기술이 이들에 의해 왜로 전해졌다.
여관방에 있던 하코네 소개 책자에 의하면 그 중에 고려약광(高麗若光)이라는 고구려 왕족이 있어 왜의 동부지방 개발에 힘썼고,하코네 개척도 맡아 했다 한다.
「고마」는 고대의 일본에선 고구려인을 가리켰다.한자로는 「고려(高麗)」「맥(貊)」「구(駒)」등으로 표기되었다.
「고마진자(高麗神社)」라 하면 주로 고구려계 인물을 받드는 신당이었고,「고마가다케」라면 고구려계 인물이 개척했거나 그들과관련이 있는 산이었다.
고마가다케 기슭에 딱 벌어지게 세워진 하코네진자도 고마진자 계열의 신당이다.
그 옛날에 이처럼 험한 산중까지 우리 조상들은 무엇 때문에 애써 진출했을까.아리영으로서는 그것이 의아했다.
『무쇠 때문이지.』 대륙과 반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섬으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간 것은 서로 전쟁하다 피신처로 삼은 탓이기도 했으나 양질(良質)의 사철(砂鐵)이 많이 캐진 때문이라고 우변호사는 풀이했다.
무쇠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철이나 철광석도 필요하지만 물과땔감도 풍성해야 한다.일본엔 강과 호수가 많은데다 비가 자주내리고기온이 따뜻하여 나무가 잘 자란다.무쇠를 만드는 최상의 조건을갖춘 땅이었던 셈이다.게다가 벼농사도 잘 되었 다.높은 제철기술과 벼농사기술을 일찌감치 지니고 있었던 우리 조상은 앞을 다투어 들어가 정착했다.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패권 다툼을 벌였다.고대 일본의 정치 갈등은 바로 고대 한국 정치 갈등의 연장선상에 그어진다며 우변호사는 비판했다 .
옛 관문 근처에 휴게소가 있었다.
「다옥(茶屋)」이라 불리는 곳으로 감주(甘酒)를 팔고 있었다.술지게미에 설탕을 넣어 끓인 것이 일본 감주다.
따끈한 그 단맛이 입에 당겼다.
빨간 담요 깔개를 깐 평상에 앉은 관광객으로 다옥 안은 몹시붐비고 있었다.
한 구석에서 우리말 소리가 들려 언뜻 바라보고 아리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시동생이 아닌가.젊은 여성과 손을 잡은 채 다정하게 앉아 있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