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이 일찍 죽는 이유는 격렬한 짝짓기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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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은 암컷보다 수컷이 몸집이 약간 더 크다. 암컷은 짝짓기를 원하지 않을 때는 피부 가 검정색으로 바뀌며 수컷을 물어뜯어 저지하기도 한다. 암컷은 무선 송신기를 갖고 있어서 죽기 전에 알을 낳기 위해 둥우리를 판다.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카멜레온은 수명의 3분의 2 가량을 길이 12㎜의 알 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지낸다. 부화하고 나면 곧바로 격렬한 짝짓기에 들어간다. 그런 다음 새끼가 햇빛을 보기 전에 죽어버린다.

카멜레온은 그 불가사의한 생태 때문에 척추동물이라기보다는 곤충 같은 느낌을 준다. 도마뱀은 카멜레온 가운데 가장 몸집이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의 길이는 9㎝, 암컷은 7㎝에 불과하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크리스텐 교수는 400 마리의 카멜레온의 몸에 표시를 한 다음 성장 패턴, 수명, 행동적 특성을 4년에 걸쳐 연구했다. 부화는 11월초에 이뤄졌고 7주만에 성체(成體)으로 자랐다. 그런 다음 이듬해 4월이면 혹독한 건기가 시작하기 직전에 모두 예외 없이 죽었다. 이때쯤 되면 모두들 힘을 상실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목격됐다.

죽기 직전에 암컷들은 12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길이가 12㎜ 밖에 안되는 것들이다. 8개월 후인 11월에 부화되고 다시 알, 유충, 성충의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같은 생명 패턴은 식물이나 무척추동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네 발 달린 무척추동물 가운데 2만 8000여종 가운데 도마뱀이나 캥거루 수컷을 포함한 20종만이 이같은 1년생 패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카스텐 교수는 카멜레온이 부화된 지 불과 4∼5개월만에 죽는 것은 섹스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직 발표된 연구 결과가 아니긴 하지만, 그는 카멜레온의 짝짓기 행위를 관찰한 결과 카멜레온에게는 짝짓기가 암컷이나 수컷 모두에게 엄청나게 위험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지루할 만큼 오랫동안 격렬하게 싸웁니다. 하지만 짝짓기는 이보다 더 격렬합니다.”카스텐 교수는 과학 전문기‘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마다가스카르의 건기는 너무 혹독해서 많은 토종 카멜레온이 동면을 통해 에너지를 비축한다. 하지만 Furcifer labordi라는 카멜레온은 동면을 취하는 대신 죽는다.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의 하인즈 그릴리치 박사는, 혹독한 신체적, 사회적 환경 때문에 성체 사망률이 높을 때는 성체가 종족 보존을 위해 짝짓기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게 옳다고 말한다.

그릴리치 박사는 “알로 배가 잔뜩 부른 암컷은 알을 낳고 난 다음엔 몸집이 3분의 1로 줄어든다. 알까기에 모든 것을 소진하다보니 껍질과 뼈만 앙상하게 남아 결국 빨리 죽게 된다”고 말했다.

카스텐 교수는 Furcifer labordi이 동면을 취하는 대신 빨리 죽는지 그 이유를 캐고 있다. 그는 카멜레온이 고농도의 안드로겐(남성 호르몬)을 갖고 있거나 특히 안드로겐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카멜레온의 짝짓기가 격렬하고 공격적이며 따라서 비교적 빨리 죽는다는 것이다. 안드로겐이 많은 동물은 짝짓기 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결과적으로 면역체계를 억압해 짧은 생애를 마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국립 과학 아카데미 학술 논문집’(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최신호에 실렸다.

이장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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