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물가부터 잡는 게 기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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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는 노상강도처럼 폭력적이고, 저격수처럼 치명적”이라고 정의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사회 전체를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어제 한국은행이 올 하반기 경제 전망을 발표했다. 성장률은 3.9%로 내려앉고 물가상승률은 5.2%로 뛸 것으로 보았다. 하반기로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질 게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부터 ‘저성장-고물가’의 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될지 모른다. 경제가 이런 빈사상태에 몰릴수록 정부와 통화당국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물가부터 잡는 것이다.

상반기 5.4% 성장(추정치)에도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하반기엔 비명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맨 먼저 정부는 경기 부양의 유혹부터 떨쳐내기를 주문한다. 6월 소비자물가는 5.5%나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의 최고치다. 한은 스스로 낙관적 입장을 접고, 국제유가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선 정부가 아무리 물가 안정에 치중해도 인플레 압력을 막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다 현재의 인플레는 전형적인 비용상승형 인플레다. 고유가와 생산비용 증가로 유발된 코스트 푸시형 인플레만큼 대처하기 고약한 게 없다.

물가 안정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막는 데도 필요하다. 인플레 기대심리는 지나친 임금인상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물가를 밀어올리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기 쉽다. 1970년대에 경험한 끔찍한 인플레가 대표적이다. 오일쇼크에 맞서 경기를 지탱하느라 느슨한 통화정책을 펴는 바람에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지 못해 재앙을 자초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최대의 경제 현안으로 인플레를 지목했다. 일부 국제 연구기관들은 하반기에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두 자릿수 이상의 인플레를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가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면 그것은 과욕이다. 물가가 두 자릿수로 치솟은 일부 국가들은 정권 붕괴는 물론 국가 부도라는 암울한 시나리오까지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