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환위기 때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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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도 서울의 한복판이 불법적인 폭력시위로 밤마다 무법천지가 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성장은 둔화하고 물가는 치솟고 있다. 생산과 판매가 모두 줄어들고, 투자와 소비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내수 부진 속에 수출이 그나마 가라앉는 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버텨줄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물경제 지표들은 일제히 경제가 하강 국면을 넘어 침체 국면에 진입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분간 경제가 살아날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각 경제주체들이 피부로 느끼는 지표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최악의 하락세를 보였고, 기업의 체감지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모든 경제주체가 지금도 경제가 나쁘지만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란 불안감에 휩싸였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가장 직접적이고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이 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 서민들이다. 경제의 말단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이들의 아우성은 민생의 위기가 생존의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방증한다. 쇠고기 파동의 직격탄을 맞은 음식점들은 매출이 1년 전보다 3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이고, 기름값 급등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목욕탕·세탁소·소규모 운송업자 등은 적자선상을 헤매고 있다. “국가부도의 기로에 섰던 외환위기 때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는 탄식이 빈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손을 놓고 죽는 길을 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경제가 어렵고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지레 체념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국회가 민생을 내팽개치고 정부가 대책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해서 국민들마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국민 각자가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고난의 시기를 견뎌내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늘리고 인재를 보듬어야 한다. 가난을 박차고 외환위기를 넘겨 오늘에 이른 위대한 국민의 힘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