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폭력시위 = 테러범 취급하는 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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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6일 오후 5시쯤. 정부 청사가 밀집한 프랑스 파리 7구 거리에서 20∼30대 100여 명이 노래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주당 노동시간 연장 등을 추진 중인 그자비에 베르트랑 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그런데 시위대가 갑자기 도로를 점거하더니 정부 청사 쪽으로 향했다. 경찰이 몸으로 막았다. 5분 정도 대치하다 경찰이 “집회 장소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연행하겠다”고 소리쳤다. 시위대가 물러서지 않자 경찰 체포조가 주동자 10여 명을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치마 입은 여성을 땅에 질질 끌기도 했고 우악스럽게 팔을 꺾기도 했다. 10분 만에 진압이 끝난 뒤 한 사복 경찰에게 “여성들까지 저렇게 다루는 건 심하지 않으냐”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경찰관은 “시위는 보장하지만 원칙이 깨지면 엄격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며 “그들의 권리는 법정에서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년 전 파리 시내에서 축구 경기 후 서포터들이 시위하던 중 경찰 몇 명이 시위대에 둘러싸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부가 욕설을 퍼부으며 위협하자 경찰관이 총을 쐈다. 청년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다. 한국 같으면 과잉진압 논란이 있었겠지만, ‘인권의 나라’라는 프랑스 언론의 논조는 시위대 비난 일색이었다.

프랑스에선 연중 시위가 벌어지지만, 지정된 장소에서 경찰과 충돌 없이 끝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폭력 집회로 변질되면 경찰은 테러범 다루듯 한다.

이달 초 런던에 출장 갔을 때 본 시위도 인상적이었다. 외국 대사관 앞에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너무 커지자 경찰관이 웃으면서 소리를 낮추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시위대 역시 웃으면서 따랐다.

한국의 폭력 시위 모습은 요즘 유럽의 안방에도 중계된다. 누구나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고, 그런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유럽은 주장하는 방식이 합법적이어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소중히 여긴다. 경찰에게 돌 던지고 새총 쏘는 한국 시위대를 보면서 유럽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스럽다.

전진배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