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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엔 피아노 한대뿐 … 문학·음악의 만남 ‘리더아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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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프라노 임선혜는 오는 12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한 후 베를린 심포니와의 제야 음악회 출연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이달 소박하게 여는 가곡 독창회는 그에게 ‘샘물’ 같은 역할이다. [서울예술기획 제공]

무대에는 피아니스트와 성악가 뿐이다. 성악가들은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의 수수한 소리에 맞춰 가곡을 노래한다. 청중은 가사가 쓰인 책을 한장한장 조심히 넘긴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 소리 대신 나즈막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외국에서 ‘독창회’하면 청중이 떠올리는 모습이다. 시인의 작품에 작곡가가 음악을 붙인 ‘리트’(복수형 ‘리더’)의 ‘밤(Abend)’라는 뜻에서 ‘리더아벤트(Liederabend)’라는 말로 일반화돼있다.

한국에서 독창회는 보통 오케스트라 반주에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최근 피아노 한 대 놓고 올리는 ‘가곡의 밤’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LG아트센터의 저녁은 전형적인 ‘리더아벤트’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소프라노 유현아(41)씨가 자신의 독창회에서 17세기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의 가곡으로 시작, 영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로 된 노래를 골고루 부른 것이다. 괴테·푸슈킨 등 대문호가 쓴 시를 청중과 성악가가 함께 읽는 학구적인 시간이었다. 라흐마니노프·풀랑크의 작품 등 한국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는 가곡들도 선보여 의미를 더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66)씨와 바리톤 박흥우(47) 씨는 정기적으로 ‘가곡의 밤’을 연다. 매년 봄에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연말이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연주한다. 작년까지 꼬박 4년을 이어왔다. 각각 16·24곡으로 된 연가곡집을 연이어 노래하는 이 공연이 열리면 200석 남짓한 작은 모차르트홀이 매번 꽉 찬다.

하이네·뮐러가 쓴 두 연작시의 번역은 신씨가 직접 한다. 직접 연주하는 사람의 느낌이 살아있어 특별하다. “음악 뿐 아니라 문학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호응이 참 좋다”는 것이 신씨의 설명이다. 첫 해에는 자리가 없어 돌아간 청중을 위해 앙코르 공연을 열었을 정도다.

이달에는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소프라노’로 알려진 임선혜(32)씨가 도전한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독일로 떠난 그는 바로크 음악계의 거장들에게 잇따라 러브콜을 받았다. 필립 헤레베헤, 르네 야콥스, 파비오 비온디 등 ‘동료 명단’이 화려하다. 3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은 첫 국내 리사이틀이다.

임씨는 첫 독창회를 위해 가곡의 정수를 골랐다. 슈만·볼프·슈베르트 등 문학과 음악의 만남에 몰두한 작곡가들의 음악이다. 임씨는 “화려한 고음과 기교를 보여줘야 하는 오페라 아리아와 달리 가곡을 부르면 스스로 정화되는 듯하다. 시를 읽는 기쁨을 노래하며 느끼는 환상적 체험이다”라고 가곡의 매력을 설명했다.

임씨의 독창회에서 베토벤 콩쿠르 우승 이후 주목 받고 있는 차세대 피아니스트 유영욱(31)씨가 반주를 맡은 점도 화제다. 피아니스트들의 가곡 연주는 ‘반주’보다 동등한 ‘듀오’에 가까울만큼 가곡에서 피아노 연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피아니스트 제랄드 무어,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미츠코 우치다의 세련된 호흡도 모두 독일 가곡 녹음으로 빛이 났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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