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복무한 제주 출신‘소녀 해병’을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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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10대 소녀들이 군복무를 한 사실이 있다고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했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소녀병(小女兵)’들이 57년만에 군복차림의 흑백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문인순(75) 할머니는 해병 4기, 해병대 상병 출신으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을 위협하던 1950년 8월 군대에 강제 징집됐다. 당시 제주여중 2학년 때다.

문인순 할머니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모두 해병대에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 주둔한 해병대사령부는 3, 4기 해병 3000명을 선발했는데 4기 가운데 126명은 여성으로 대부분 여교사와 여학생이었다. 제주일보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원한 소녀병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1950년 9월 해군수송함을 타고 진해에 도착한 소녀병들은 한 달 가까이 강도높은 각개훈련과 총검술, 사격술을 배웠고 1951년 5월까지 해군사령부 소속 사병으로 복무했다. 하지만 여성 해병들은 특별대로 분류돼 전장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았다. 제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황이 호전되자 원래 취지 와는 달리 후방에 남게 됐고 주로 진해에 있는 해군본부와 진해통제부(훈련소)에서 사무ㆍ보급ㆍ간호 등 후방업무를 지원했다.

6ㆍ25 때 어린 나이로 참전한 ‘소년병 전우회’측은 소녀병 가운데 현재 16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94년 제주여성해병전우회가 조직됐고, 최근에는 이들 제주 출신의 해병 4기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강제 징집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그 당시는 전시라는 특수 상황이었고 그분들이 스스로 지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참전시킨 것은 국제 협정 위반이고 이를 시킨 사람은 전범 재판에 회부된다. 할머니가 된 소녀병들은 올해 초 유엔 인권위원회에 탄원서를 냈다. 정부는 뒤늦게 실태 조사와 함께 충혼탑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 소녀병들을 여전히 강제 징집이 아닌 지원병으로 규정하고 있어 국가 유공자 대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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