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강1만리>27.사천성-영화의 원조 '그림자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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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수백년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입을 통해 펼쳐지고 수백만의 군사가 단지 두손에 의해 움직이는 기적의 예능.바로 1,000년이상 중국인들이 즐겨온 그림자극(皮影戱)이다.신화와 전설,일상의 삶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그림자극은 바로 빛과 그림자로 이뤄진 환상의 예술이다.영화의 먼 조상이라고나 할까.
그림자극에는 가죽으로 만든 그림자인형들이 등장한다.이 그림자인형은 뛰어난 조형예술적 가치로 이름 높다.천등영(川燈影)으로불리는 사천의 그림자인형은 소가죽으로 만든다.투명도가 높고 변형되지 않으며 정교한 조각이 가능한 이 가죽을 오리고 조각하고채색한뒤 연결해 만든 기묘한 인형들,그것은 그 자체로 섬세하고아름답다.그러나 이 인형들의 진수는 역시 스크린에서 나타난다.
보통 인형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농담(濃淡)과 색채는마치 수묵색채화를 보는 느낌 이다.이런 독특한 효과로 인해 그림자극은 중국의 독립된 극장예술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전통 그림자극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손오공이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끼어들어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는 내용의 『손오공희투반도회(孫悟空戱鬪蟠桃會)』는 한폭의 상징화를 보는 듯하다.구름을 타고 날며 주정부리는 모습과 신출귀몰한 행적들이 모 두 색색의 그림자로 표현된다.인체로서는 불가능한 강렬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림자극 역시 새로운 창작극 제작이 활발하다.성도 인형극단이 자랑하는 창작극 『비천(飛天)』은 돈황석굴 벽화에 등장하는 환락의 여신 비천상을 본떠 인형을 만들고 벽화의 춤사위로동작을 재구성한 것으로 신비감을 극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닭싸움』은 수탉 두마리의 싸움을 그린 것으로 격렬하고도사실적인 싸움 장면과 깃털이 떨어지는 것까지 표현해내는 경이로운 연출로 무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글=오수경 한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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