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예쁘게 찍히는 85㎜렌즈 인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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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18면

“아빠를 팔고 엄마를 사야겠어.” “왜? 엄마를 팔고 아빠를 사면 몰라도….”
임성호(23·한양대 재료공학과 3학년)씨는 지난달 지하철에서 이런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수상한 논의는 바로 DSLR(렌즈 교체형) 카메라의 렌즈를 새로 구입하는 것에 관한 얘기였다.

대학생 임성호씨가 말하는 ‘20대 디카족’

“같은 급에서 제일 좋은 렌즈를 아빠 렌즈, 그 다음을 엄마 렌즈라고 하더라고요.”
렌즈 생김이나 기능에 따라 별명도 다양하다. 캐논의 85㎜렌즈는 생김새 때문에 ‘만두’라 불린다. 렌즈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여친 렌즈’. 여자친구가 예쁘게 찍히는 렌즈라는 뜻이다. 인물은 또렷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찍을 수 있는 85㎜렌즈를 가리킨다.

DSLR 열풍의 중심엔 20대 젊은이들이 있다. 블로그·미니홈피 등에 멋진 사진 올리기를 즐기는 이들의 문화에 DSLR의 특성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DSLR은 찍는 방법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진이 멋있게 나오고 필름 값 걱정 않고 마음껏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카메라가 가벼워지고 작동법이 간단해 여성 사용자도 많다. 100만원대 이하 보급형의 등장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DSLR이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제 친구도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여자친구 사진을 찍겠다고 과외비를 털어 DSLR을 샀어요.”

임군은 처음엔 보급형으로 구입하지만, 점차 고급 기종으로 바꿔 가게 된다고 했다. 블로그 등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주요 목적인 만큼 인물 사진이 잘나온다는 기종이 인기다. 망원렌즈·광각렌즈 등 렌즈의 종류도 점점 늘려 간다.

“다른 카메라나 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면 욕심이 나거든요. 카메라에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을 들인 애들도 있어요.”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은 약 400만원. “밥 굶어 가며 카메라 산다”는 말이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았다. 임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DSLR을 구입했다고 한다. “취미에 쓰기에는 큰돈이 아니냐”고 묻자 “출사(사진을 찍으러 야외에 나가는 것)를 가면 당구장이나 PC방에 안 가게 되고 담배·술값을 카메라 비용으로 쓴다”고 강조했다.

직장인 동호회처럼 모델을 고용해 멋있게 사진을 찍어 보고도 싶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동급생들끼리 서로 모델이 되어 준다. 캠퍼스 디카족들은 디자인학과·신문방송학과 등에 있는 실습용 스튜디오를 활용하기도 한다. “요즘엔 취업 이력서용 사진도 학교 스튜디오에서 디카로 찍어서 쓰는 애들이 많아요.”

인물 사진에 포토샵은 필수다. 여학생들은 턱을 깎고 눈동자를 키우는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임군은 “친구들 사진을 찍어 줘도 ‘점 좀 지워줘~’ 하니까 (포토샵을)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다. 이번 방학 땐 학원에서 배워 볼까 한다”고 말했다.
‘사진 발표장’인 인터넷은 실습 교재로도 활용된다. 인터넷에 멋진 사진이 올라오면 똑같은 장소에 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찍어 보는 것이다.

임군도 불빛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는 장면을 잡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고 그대로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옛날엔 사진 동아리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물어보고 찍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에 다 나오니까 배우기 쉬워졌어요.”

20대는 카메라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많다. 임군의 카메라에는 분홍색 가죽 핸드그립(손잡이)이 달려 있다. 브랜드 제품으로 5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카메라에 원래 달려 있던 목에 거는 끈도 3만원을 주고 하늘색 줄무늬 제품으로 교환했다. 카메라 렌즈의 후드 부분을 스티커로 꾸미는 것도 인기다. 카메라 가방도 유행에 따라 선호 브랜드가 달라진다.
“카메라가 제2의 애인이니까요.” 임군이 카메라의 분홍색 손잡이에 손을 끼우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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