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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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3부 선화공주(善花公主) 서동요(薯童謠)③ 사랑하지 않는 자와는 결코 「얼지 않는」엄한 자기 계율(戒律).
사랑하면 서슴없이 「얼되」 사랑하지 않으면 결단코 「얼지 않는」-이것이 프리 섹스의 바탕 모럴이 아니겠는가.
「얼다」는 「성교(性交)하다」「교합(交合)하다」라는 뜻의 우리 옛말이다.때묻지 않은 그 말의 소박함이 좋았다.
사실 성행위나 성기에 관한 말들은 처참히 때묻어 있다.섹스에대한 인간의 음심(淫心)이 말을 망가뜨려 온 것이다.원초의 밝음.자유로움을 되찾을 길은 없는가.
「얼」이 또한 「연못」「샘」을 가리키는 옛말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운 합일(合一)이다.
『얼과 얼어볼까?』 우변호사는 아리영을 안으며 이렇게 농담하고 웃었다.아리영의 은밀한 곳을 「얼」,즉 「연못」에 비겨 한소리다.발트해 바닷가 호텔에서의 일이다.
『얼에는 용이 살고 있었지요….』 우변호사는 무왕 어머니의 고사(故事)를 얘기해주었다.아리영이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로맨스를 소상히 알게 된 것은 우변호사 덕이다.
그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밝았다.외국에서 사는 한국인일수록 우리 역사에 정통해야 한다며 어머니로부터 누누이 잔소리 들은 결과라 했다.
『용번법(龍飜法)이란 것이 있어요.중국의 현녀경(玄女經)에 실렸던 비법이라는데,얼에 살고 있던 용도 이 얼기 비법을 알고있었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아리영을 반뜻하게 누이고 곡실(穀實)과 그 윗자리의 금구(金溝)를 공격했다.곡실은 의학용어로 음핵귀두(陰核龜頭),금구는 전음순교련(前陰脣交連)이다.우리말로는 뭔지 알 수 없다.
팔천이심(八淺二深).여덟번은 얕게 두번은 깊이….
여자들의 백가지 병을 고치는 비법중의 비법이라던가.성행위로 병을 고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백병(百病)은 몰라도 아리영의경우 불감증만은 분명히 고쳐진 셈이다.
전설의 성수(聖獸)인 청룡이 용틀임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용번법이라 이름지어졌다는 그 비법 아래 아리영은 몸을 뒤척이며 흡사 노래하듯 신음했었다.
우변호사와 지낸 그 며칠밤은 아리영의 육신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고 먼 북극양의 수평선 너머 사라졌다.이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태풍이다.
그 태풍이 몰아온 이혼의 상처가 분화구처럼 움푹 패어 있다.
이제 이 구멍뿌리에 숱한 눈물이 괴어 짓푸른 연못을 이룩할 것이다.연못에 용이 날아와 잠길 날은 언제인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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