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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수집가들 나서 문화SOC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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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소장 명품 전시회에서 강의한 앤티크 저술가 김재규씨. 그의 뒤로 네덜란드에서 만든 중국풍 자기탑 '꽃 피라미드'가 보인다.

“꽃 피라미드라는 이름의 이 중국풍 자기탑은 사실 네덜란드에서 만든 튤립 화병입니다. 양쪽에 층층이 배열된 구멍에 튤립을 꽂았죠. 멋진 자기에 아름다운 튤립이 꽂힌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튤립 투기가 일어났던 네덜란드니까 이런 자기가 나온 거죠.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에 중국의 자기수출이 어려워지자 네덜란드 델프트의 도공들이 중국 분위기의 자기를 만들어 판 것이죠.”

서울 순화동 국제교류재단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소장 세계명품도자전(23일까지) 현장에서 만난 앤티크 저술가 김재규씨(62). 재단 초청으로 강연을 하러 온 그는 역사와 문화를 곁들여가며 도자기에 담긴 뜻을 풀어냈다. 사실 그는 도예가, 역사학자도 아닌 앤티크 전문가다. 이력도 독특하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던 그는 1990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새 길을 찾아 떠났다.

“사업가로 바쁘게 살다가 우연히 아프리카와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와는 삶의 속도는 다른 사람들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더군요.”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사업을 접고 영국으로 건너가 역사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연히 1950년형 포드를 발견하면서 클래식카의 세계에 빠지게 됐다. 이를 계기로 앤티크 시장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지식과 감식안을 길렀고, 앤티크 전문 교육도 받았다. 수집가로 출발한 그는 어느새 앤티크 딜러로 변신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유럽의 앤티크 문화를 책으로 소개하는 앤티크 저술가로 일하고 있다.

그의 명함은 온통 책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나온 책: 앤티크 문화예술 기행(한길사) 유혹하는 유럽 도자기(한길사) 유럽문화의 수수께끼(예경) 이라고 적힌 아래에 출간예정인 책의 제목이 13개나 적혀 있다. ‘벼룩시장 견문록’ ‘앤티크 가구 이야기’ ‘아름다운 자동차 문화, 클래식 카’ ‘문화 여행’ 등등. 그는 ‘도자기’ ‘유리’ ‘책’ ‘보석’ 등 12권짜리 앤티크 시리즈물 발간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쓰려고 하는지 물어봤다.

“제대로 된 앤티크 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입니다. 영국에서 보니 앤티크는 하나의 학문이더군요. 예로 18개국의 재봉침 수집가가 대학 건물을 빌려 3박4일 동안 국제행사를 여는 것을 봤습니다. 재봉침만 모으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서구에선 앤티크 문화가 생활의 일부로도 자리잡고 있어요.”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로 고지도 수집가의 경우 세계적인 석학이나 일본의 유명인사는 있는데 한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독도 문제를 이런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 국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이렇게 모든 분야에 매니어가 많이 생겨야 문화의 층이 두터워지고 한국 사회의 소프트 파워가 강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리티지 소사이어티’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한국에 ‘문화 SOC(사회간접자본)’를 까는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한국도 전문 수집가들이 많아지고 이들이 곳곳에 수준 높은 박물관을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화 SOC죠. 영국 대영박물관도 한스 슬로안 경이라는 수집가가 평생 모은 물건을 정부에 기증하면서 세운 겁니다. 그런 바탕이 있어야 ‘창조적 소비’가 가능해집니다. 식기 하나, 그릇 하나도 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더욱 창조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궁극적으로 100개의 박물관이 모인 거대 ‘박물관 클러스터’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세계적인 명물이 되어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 것입니다. 30-40개가 모인 박물관 마을 건립을 추진하려 합니다. 이런 문화적인 것이 공장을 대신할 미래산업이라고 믿습니다. 새 산업이 자라면 많은 일자리도 생길 것이고요.”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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