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TV신년특집극 중년 갈등에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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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지난 2일 TV를 켠 시청자들은 한번쯤 「아버지」를 만났거나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했을 것이다.지상파 3사가 신년특집극의 주제를 「아버지」로 통일해 내보냈기 때문.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들 드라마속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헤게모니를 잃고 방황하는 중년의 모습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MBC 『아빠의 연인』 딸 하나를 남기고 난산끝에 아내가 죽었다.20년을 고이 기른 딸이 대학1학년이 되자 결혼을선언한다.아버지는 상실감에 빠진다.딸의 결혼직후 아버지가 딸의가정교사와 결혼,이번엔 딸이 상실감을 느낀다.
극은 빠른 템포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부녀가 각각 결혼한다는 소재도 참신했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아버지와 딸의 갈등도 적나라하게 묘사됐다.딸 성진의 성격은 충동적이고 고집센 신세대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아버지 강교수가 겪는 부모로서의 갈등도 공감대를 충분히 살만했다.그러나 지나치게 감각적인 대사『너같이 한심한 딸을 낳느라 죽은 네엄마가 불쌍하다』『대학에서연애질이나 가르치더냐』등은 오히려 극의 흐름을 끊어놓았다.또 성진역 이지은의 연기력이 배역의 미세한 감정흐름까지 소화해낼 만큼 충분치 못했던 것도 아쉬움이었다.
□ KBS2 『아버지』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아니 돌볼 능력이 없었다.하교길 막내딸을 마중가고 대학입시날 아들의시험장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게 아버지가 한 일이었다.더욱이 경제적 무능력은 아버지를 가장으로 인정하지 않게 했다.그래도 아버지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열성적이다.
일견 우리시대 아버지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적이고 희생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능력있고 돈 잘버는 아버지보다 이웃을 사랑하고 자식들을 그늘에서 뒷바라지해주는 아버지.이 드라마는 그런 아버지상을 강력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아버지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여느 홈드라마처럼 밋밋하게 해피엔딩으로 손쉽게 결말짓고 만 것은 불만이었다.
□ SBS 『친정아버지』 개그드라마로 꾸며진 이 신년특집극은출가하는 딸과 아버지 사이의 애틋한 정을 다뤘다.혼수도 안해주고 싶고,예식장비도 깎고 싶고,사윗감도 자꾸 의심이 간다.소재설정과 구성이 좋았음에도 이 개그드라마는 웃음과 감동을 함께 준다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웃음에 치우친 전반부와 감동을 의식한 후반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친정아버지역은 베테랑 연기자 백일섭이 맡았다.그러나 노련한 연기도 탄탄한 구성이 받쳐주지 못할 때는 빛을 잃고 만다.개그드 라마의 소재를 넓히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소화해내는 데는 아직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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