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희곡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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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올해의 응모작들도 탈옥수.정신병자,술집.기차역 등 상투적 인물들과 극한상황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소위 신춘문예형 희곡들,또는 희곡적 배려없이 생활주변의 잡담을 늘어놓는 습작 수준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그러나 개중에 신선한 소재와 연극적 감각으로 작가부재의 한국연극계를 밝혀줄 미래의 희곡작가를 몇몇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마지막 심사대상에 남은 작품들은 고옥화의『남자파출부』『꽤 오래전에도 있었던 일』,김현경의 『그리고 평생이 흘러갔다』 『모니터,즐거운 중산층을 보다』,그리고 최윤정의 『침묵의 소리』등이었다.이들 작품은 동시대적 감각을 지니면서도 긴 장.절제.활력.함축등 고전적 덕목들을 부분적으로 견지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고 하겠다.반면 신세대적 감성을 내세운 탓인지 최근 창작극계의 영향인지 희곡.연극의 본질보다 단편적인 무대효과 창출에 머무른 감도 있다.
다가구주택의 세남녀를 그린 『침묵의 소리』는 세 인물의 공간을 병치시키고 심리변화에 따라 벽을 이동시키는 등 무대화의 배려가 흥미를 끌었으나 「나」라는 주관성이 극복되지 못하고 세 인물의 관계설정이 불분명하다는 아쉬움을 주었다.『 그리고…』와『모니터…』를 쓴 김현경의 경우 현대인의 무력감을 극화했는데 모니터.마리아상.말더듬이등을 이용한 자극적인 무대효과나 힘있는대사들이 작가의 만만찮은 재능을 암시하고있다.그러나 진지성의 부족과 산만한 구성이 문제점으로 남 는다.
당선작으로 뽑은 고옥화의 『남자파출부』는 남녀 성비례가 깨진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콧대높은 아가씨의 사랑을 얻어내는 남자를 그린 코미디다.인물들의 성격화가 불충분하고 파출부가 여자의 사랑을 얻는 계기가 불명확한 아쉬움이 있지만 절제 된 대사,반듯한 구성,세련된 장면전환등이 상당한 완성도를 성취해 가장 높은점수를 받았다.인생을 피상적으로 큰 고민없이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 이 작가에 대한 우려인데 같이 응모한 『꽤 오래전에도…』역시 멜로드라마적인 선악2분법 이 문제점으로 지적됐음을 일러둔다.
심사위원:김광림 김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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