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노무현 탓, 이명박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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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500여 년 전 공자(孔子)는 말했다. “군자구제기(君子求諸己), 소인구제인(小人求諸人)”이라고.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는 말이니 일이 잘못되면 군자는 제 탓을 하지만 소인은 남 탓을 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해도 자기를 탓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는 것이 필부필부(匹夫匹婦)다. 집안 일이 잘못되면 마누라 탓부터 하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모자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세상 탓을 하는 나도 영락없는 속물(俗物)이고, 소인이다. 『논어(論語)』에는 ‘소인지과야(小人之過也) 필문(必文)’이라는 말이 있다. 소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핑계를 꾸며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뭇사람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막대한 적자를 내놓고는 부하직원 탓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패전의 책임을 휘하 장졸이나 전임 사령관에게 돌리는 군사령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라. 그 회사나 군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리더라면 일이 잘못되더라도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남 탓을 하는 순간, 그 리더는 비겁한 소인이 된다. 존경과 신뢰, 권위와 지도력은 소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리더를 꿈꾸는 사람을 위해 공자가 만든 사자성어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자기 수양을 통해 사람다운 사람이 된 뒤에 남을 다스리라는 말이다. 소인이 잠시 눈을 속여 남을 다스리는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래가긴 힘들다.

“잘못되면 무조건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다.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탓, 밥 먹다 체해도 노무현 탓, 로또가 안 돼도 노무현 탓… 세상만사 잘못된 것은 모조리 노무현 탓이라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의 넋두리 같은 말이었지만, 그 정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노무현은 갔다. 그토록 욕을 먹던 그도 이제 ‘노공이산(盧公移山)’이란 인터넷 ID를 쓰는 봉하마을 주민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도 “노무현 탓”이라는 소리가 들리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기독교계 원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그때 처리했더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지”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더라면 이런 난리가 안 났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자기가 지금 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일 터다. 현직 대통령이 전임자 탓을 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청와대 전자기록과 문서를 봉하마을로 몽땅 가져갔다는 요상한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불법 복사해 갔으며, 그중에는 수십만 명에 대한 인사 자료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인사 검증을 제대로 못한다는 불만까지 제기됐다. ‘강부자·고소영’ 내각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노무현 탓이라는 뉘앙스다. 불법행위를 했다면 철저히 조사해 떳떳하게 결과를 발표하고 의법처리하면 될 터인데 슬슬 흘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도 노무현 탓을 해야 할 만큼 여전히 노무현이 겁난다는 얘긴지, 낙향 후 오히려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이 배가 아픈 것인지, 아니면 그가 곧 오픈한다는 시민참여형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이 ‘제2의 아고라’가 될까 두렵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비상한 시국에 그런 꾀를 낸 참모는 우선 컴맹이 틀림없고, 둘째로 한 건 올려 자리를 보존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소인이라는 점이다. 『논어』에는 군주를 섬기는 자리에 오른 필부가 ‘진실로 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지경이 되면 못 할 짓이 없다(苟患失之 無所不至)’는 말이 있다. 이 참모는 “잘못되면 무조건 이명박 탓”이라는 말이 요즘 시정(市井)의 새로운 유행어인 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