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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만3000대 참여…“하루 피해만 1280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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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04면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이틀째인 14일 트레일러들이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터미널(ICD) 하치장에서 운행을 멈추고 서 있다. 의왕=김성룡 기자

물류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가 계속된 14일 전국 곳곳의 항만과 산업단지에서 물류 차질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부산항은 주요 컨테이너 부두가 포화 상태에 접어드는 등 항만 기능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다. 전국 주요 항만과 산업단지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상시의 24%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멘트 공장의 출하량은 8%에 머물렀다.
국토해양부는 이날 운송거부 차량을 전국적으로 1만3115대라고 집계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집단 운송거부로 인한 피해액이 하루 12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이날 부산항(55대)·의왕(40대)·광양(5대) 등에 100대의 군 화물차량을 투입했으며, 차량 부족으로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는 평택·당진항에도 일반 화물차 227대를 지원했다.
이번 집단 운송거부는 최악의 물류대란을 몰고 왔던 2003년 5월보다 규모가 크다. 당시에는 화물연대 소속의 5000대 차량이 운송거부에 참여했으나 이번에는 그 두 배를 넘는다.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일반 화물차주가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L당 평균 1470원이던 경유가가 1900원을 넘어서면서 운송비용이 급등한 것이 직접 원인이다.
2003년 당시 포항 철강공단에서 시작된 운송거부는 부산항과 광양항·의왕ICD 등으로 확산되면서 2주 만에 6000억원의 피해를 냈다. 노무현 정부는 경유값 인상분 전액 국고보조,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시간 연장 등 화물연대의 요구조건 상당 부분을 수용했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는 2003년 5월과 8월, 2006년 12월에 이어 네 번째다. 요구 사항은 ▶경유값 인하 ▶운송료 인상 ▶표준요율제 채택 등으로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잊혀질 만하면 운송거부가 재발하는 것은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땜질처방 때문이다. 화물연대도 여기에 동의한다.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은 “단순히 기름값을 내리거나 운송료를 올린다고 당장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며 “가장 시급한 게 악덕 다단계 문제”라고 말했다.
화물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화물운송은 ‘화주-알선업체-운송업체-차주’의 단계만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알선·운송업체들이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겨간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기본 단계 외에 평균 3.7단계를 더 거친다. 알선업체는 전국적으로 약 1만2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 본부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운송료를 올려도 알선업체만 배부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의류 도매상을 하고 있는 양은식(52)씨는 “이달 초 62만원의 운임을 주고 컨테이너 한 개 분량의 의류를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져왔는데, 기사한테 물어보니 40만원밖에 못 받았다고 하더라”며 “나머지 22만원은 결국 사이에 끼어든 알선·운송업체들이 가져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알선업체의 수수료가 운임의 5%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화주(貨主)인 양씨와 기사(차주) 사이에 7단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안다. 국토해양부 김희국 해운정책관은 “화주와 차주 사이에 있는 수많은 알선업체들 때문에 운송비용이 올라간다”며 “이것을 해소해야 물류대란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토부(당시 건설교통부)는 물류대란을 겪은 뒤 2004년 1월 ‘화물자동차운송가맹사업제’를 도입했다. 어디에 빈 화물차가 있고, 어디에 짐이 있는지를 정보망에 띄워놓고 화주와 차주를 바로 연결하는 ‘화물 정보망 서비스’다. 2000년부터 ‘내트럭’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해온 SK를 비롯한 6개 기업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4년이 지났지만 사업은 답보 상태다. SK내트럭이 화물차주 유료 회원 6500명과 알선업체 130곳을 회원으로 모아놓고 6만 대 규모의 중개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뿐, 나머지 5개사는 개점 휴업 상태다. 가장 큰 화주인 대기업들이 물류회사를 자회사로 두거나, 기존 알선업체를 통해 자체 물량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알선업체도 세원(稅源) 노출을 우려해 동참하는 것을 꺼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맹사업이 제대로 운영되면 화물운송업계의 악덕 다단계 구조가 해소될 수 있다”면서도 “알선업체나 화주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투명한 정보망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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