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100억 약정 이용희씨 “돈 없어 꿈 접는 인재 없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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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100억원 상당의 역삼동 빌딩을 기부한 이용희씨<右>가 이장무 총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대 제공]

12일 오전 10시쯤 서울대 후문 연구동에 위치한 발전기금 건물에 흰색 구형 그랜저가 들어왔다. 운전석에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노인이 내렸다. 캐주얼한 티셔츠와 재킷을 입고 있었다. 젊은이들도 즐겨 입는 브랜드였다. 검은색 구두는 오래돼 보였다. 그는 걸어 2층에 위치한 발전기금 사무실로 올라갔다. ‘기부 약정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서울대에 100억원 상당의 빌딩(서울 역삼동 소재)을 기부한 이용희(70)씨는 기자를 만나자 “대단하지도 않은 일인데 소문 낼 거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소소히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내 또래 다른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부모에게는 한 푼도 물려받지 못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이씨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을 이어갔다.

“나의 기부는 곧 자식과 가족의 기부입니다. 그들의 희생과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자식에게 돈을 주면 자식이 굶어 죽는다’고 보도했는데, 그건 좀 지나친 듯하네요. 다만 적지 않은 부자들이 말년에 가진 돈을 어떻게 써야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씨는 발전기금 사무실에서 기부 사항에 대해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평생 사업을 해온 터라 꼼꼼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기부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황신애 부장은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 확충’이라는 기부자의 뜻을 그대로 따르겠다. 학교는 이 목적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기부자에게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전기금은 “4월 시작된 ‘맞춤형 기부’에 첫 열매가 열렸다”며 들뜬 분위기였다.

오전 11시가 되자 이씨는 서울대 본부에 위치한 총장실로 가 ‘기부금 약정식’을 했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가 세계적으로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부받은 돈을 소중히 써 세계적 석학과 글로벌 리더를 키워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돈이 없어 꿈을 접는 인재들이 없게 해달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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