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설치작가 8인전.연출"-호암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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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광주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인 쿠바작가 카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를 돌아보던 한 촌로가 『이런 것은 나도 하겠다』고 말해 주위를 웃겼다고 한다.빈 맥주병들을 늘어놓은 위에 「감시원 청소배」라고 쓰인 어설픈 나룻배 한척이 올려져 있는 단순한 형태,맥주병과 배라는 낯익은 재료등이 주는 친근감 때문일까.
현대인의 미의식에 충격을 주면서 미술의 중요한 조류로 자리잡고 있는 설치미술은 촌로가 넘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일 수도 있고 미술평론가들 사이에서조차 『잘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13일부터 호암갤러리에서 개막되는 「프랑스 설치작가 8인전-연출」은 전시장이라는 하나의 장(場)속에서 설치작품들이 서로 대화하고 섞이는 연극적인 분위기를 관람객들이 느끼도록 기획된 전시로 관심을 모은다.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이며 영화인으로 다재다능한 활동을 펴고 있는 미셸 누리자니가 2년에 걸쳐 기획,「연출」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구성한 전시회다.참가 작가는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다니엘뷔렝(57).베르트랑 라비에(46).장 피에르 레이노(56).
사르키스(57)와 신예작가로 각광받고 있는 나탈리 엘레망토(30.여).안느 페레(33.여).클로드 레베크.카를로스 퀴스니(48). 전시장 입구엔 세계적인 스포츠카인 빨강색의 알파로메오한대가 처참하게 우그러진 모습(라비에 작,『줄리에타』)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안쪽으로 들어서면 뷔렝의 작품인 흰색과 붉은색.검은색의 띠로된 장막이 시선을 끌고 그 옆 바닥에는 9개의텔레비전 모니터 사이에 적색과 청색 비단이 놓여있는 사르키스의작품이 손동작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세상의 음흉함 사이의 순환관계를 표현한 반복적인 비디오 플레이를 보여준다.그 옆에는 병원침대.의약품등이 널려 있는 레베크의 작품,핵폐기물을 상징하는 마크가 선명한 붉은색과 청색의 통들이 들어있고 뚜껑이 열린상자가 설치된 레이노의 『세개의 섹터로 된 리본』이 놓여 현대의 공포.암흑등을 암시하고 있다.
전시장 안쪽으로는 커다란 장식케이크의 느낌을 주는 페레의 작품 『피에스 몽테』가 설치돼 시선을 끈다.
부드러운 프란넬과 비단,레이스의 부드러움으로 감싸인 이 작품은 속에 면돗날이 숨겨져 있다.그 옆으로 대리석 가루를 깔아놓은 엘레망토의 『당신은 회화작품을 보고 있습니다』라는 일종의 놀이공간이 펼쳐지고,허공에 걸려있는 퀴스니의 『경 적과 파슬리』등은 회화작품이 벽에만 걸리는 것은 아니다는 주장을 실행하기도 한다.
개개의 작품 성격상 이번 전시는 현대과학문명의 이율배반,질병에 대한 공포,즐거운 놀이공간과 감춰진 위험등에 대한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누리자니는 『이번 전시는 설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8명의 작가들은 연극속의 배우고 나는 그것을 연출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작가들이 재현한 연극속의 분위기를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설치작 품은 그저 보이는대로 느껴라』는 뷔렝의 말처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닌 작품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특이한 경험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호암미술관과 프랑스예술활동협회,주한 프랑스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내년 1월21일까지 계속되며 개막일인 13일오후2시에는 삼성생활문화센터에서 「오늘의 프랑스 설치미술」을 주제로 작가와의 대화가 열려 설치미술에 대한 이 해를 돕게 된다.(02)751-9995.
김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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