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증세에 주사약은 갖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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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32면

“아시아 펀드 드세요.”
“선진국 상품이 딱이에요.”

‘노래방 시스템’으로 실태 봤더니

지난달 말 A은행의 강당. 직원이 2명씩 무대로 나왔다. 고객과 판매원으로 분장해 ‘창구 풍경’을 재현했다. 주가가 시원찮을 때의 펀드 가입이 주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고객에게 내민 펀드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창구에 앉느냐가 내 지갑의 두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의 ‘롤 플레잉’게임은 피델리티자산운용이 판매사의 질(質)을 높이기 위해 마련했다. 3년간 1만2000회에 걸쳐 판매 교육을 실시한 피델리티의 최기훈 이사는 “직원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자격증도 있다. 그런데 막상 손님이 앞에 있으면 전달이 잘 안 된다. 지식 위주로 공부를 해서 그렇다”고 일침을 놓았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 판매법’이 절실하다는 소리다.

이런 지적은 ‘노래방식 평가 시스템’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피델리티는 게임처럼 자산배분을 하는 교육법을 개발했다. 직원끼리 팀을 짠 뒤 가상으로 시장정보를 주고(사실은 과거에 실재했던 상황) 고객을 위해 10개의 펀드로 ‘투자 바구니’를 만들게 했다.

역시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팀은 아시아 시장을, 어떤 팀은 선진국 시장을 주포로 정했다. 뭐가 잘못됐는지 바로잡기 위해 과거의 최적 포트폴리오와 비교해 노래방에서 박자·음정에 점수를 매기듯 항목별로 각 팀의 성적을 평가했다.

최 이사는 “상황에 적절한 펀드를 추천하는 게 아니라 머리에 우선 떠오르는 상품이나 본사가 판촉에 나선 상품을 내미는 사례가 많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펀드 수익률만 보지 말고 은퇴·재무목표에 맞춰 판매를 하는 시스템적 변혁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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