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자기 합리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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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28면

사람은 자기 합리화의 동물이다. 주어진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판단이 틀리면 운이나 주변 여건을 탓한다. 때로는 앞뒤가 안 맞거나 모순된 결론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도 마찬가지다.

유가와 경기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대표적이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요즘 유가가 내리고 경기는 좋아질 것이란 전망을 근거로 투자자들에게 낙관론을 설파하기 바빴다. 논리는 이렇다. ‘현재 유가는 거품이다. 국제 투기자본의 가세로 가격이 최대 40%까지 과대평가돼 있다.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경기는 반대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신용경색은 올 1분기로 바닥을 찍었다. 좋아질 일만 남았다.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성장도 미국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 기업들의 실적은 하반기로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허점이 눈에 띈다. 경기가 좋아지면 기름을 많이 쓰고, 나빠지면 적게 쓸 수밖에 없다는 건 상식이다. 2003년 이후 미국 경제와 증시의 호황도 이라크 침공 이후 본격화한 국제 유가의 상승세와 발걸음을 같이했다. 유가가 치솟고 있는 것을 투기자본의 가세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경기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길고 깊은 침체를 겪을 위험에 처해 있지만 신흥 개도국 덕분에 세계 경제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수출은 줄어도 전체 수출은 크게 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자원 고갈 등으로 공급이 늘어날 여지는 줄어드는데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게 고유가의 근본 원인이다. 투기자본은 여기서 진폭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기의 회복은 유가를 떨어뜨리기보다는 오히려 고유가를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 금융사들의 2분기 실적 예고는 신용경색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용이나 소비 등 실물경기는 아직 바닥이 어딘 줄 모르는 상태다.
금리에 대한 반응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얼마 전부터 금리 인하 행진을 중단하고 인상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지자 증시는 이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금리 인하는 경기가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인상은 좋아질 것으로 내다보는 행동이라는 해석과 함께였다. 하지만 그린스펀 전 의장이 금리를 가파르게 내리기 시작한 2006년에도 증시는 반색을 했었다. 금리를 내리면 채권 등 고정금리 자산에 투자하던 돈이 증시로 옮겨와 주가가 뛴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경향을 꼭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심리학은 자기 합리화를 외부로부터 가해진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맘이 편해진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유가나 경기 변수로 하루하루 희비가 엇갈리는 요즘 시장에선 스트레스를 감수하더라도 냉정하게 상황을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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