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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 원’ 정신으로 한국 생태관광 1번지 만들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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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13면

5일 오후 3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난데없이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아올랐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나비들은 곳곳에 흰 꽃잎처럼 내려앉았다. 묘역의 추모 분위기와 어우러져 숙연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국립현충원을 수놓은 나비 660마리는 전남 함평산(産). ‘나비 전도사’ 이 군수의 아이디어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현충원 나비 날리기 행사가 열렸다. 그에게 이날은 특별했다. 오전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기관 표창을 받았다. 마흔 살 젊은 나이에 함평군수가 돼 나비와 함께 살아온 지 10년. 환경 선진화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나비와 함께한 10년, 이석형 함평군수

현충원 나비 날리기 행사가 끝난 뒤 이 군수와 마주 앉았다. 군수에 세 번 내리 당선돼 10년 동안 나비에 미쳐 평범한 농촌 지역으로 전남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함평군을 대한민국 생태·환경의 대명사로 탈바꿈시켰다. 이 군수는 함평농고와 전남대를 나와 광주 KBS 프로듀서를 했다. ‘58년 개띠’다. 1998년 3월 그는 12년 동안의 방송국 PD 생활을 접었다.

-불혹의 나이에 잘나가던 방송국을 때려치운 이유는.
“고교 시절과 대학생 때 학생회장을 하며 언젠가는 꼭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하리라 맘먹었어요. PD로 살면서도 가슴속에 꿈을 품고 있었죠. 나이 40이면 인생에 터닝포인트(전환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총선에 출마할까, 어떨까 고민하고 있는데 ‘무작정 중앙무대에서 정치를 하려고 하지 말고 지방자치단체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고 군수 선거에 뛰어들었지요.”

-첫 선거에 당선했으니 운이 좋군요.
“현직 군수를 이기고 당선은 됐는데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군 재정 상태를 살펴보니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더군요. 군의 세금수입은 연간 44억원이었고 재정자립도는 12%였어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70%나 되고,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20%를 넘어 활력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였습니까.
“10년 전 함평군은 ‘3무(三無)의 고장’이었습니다. 천연자원이 없고, 산업자원이 없고, 관광자원이 없었죠. 지역마다 적어도 하나는 있는 국가지정 보물도, 큰 사찰도 하나 없는 곳이 바로 함평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녘 군청 뒷산에 올라가 담배를 꺼내 무는 날이 많았죠. 그러기를 몇 달이 흘렀어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머리를 때렸습니다. 함평읍내를 관통하는 함평천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이 천변에 대규모로 꽃을 심어 친환경을 조성하고 거기에 나비를 날려 생태체험 축제를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죠. 어린이들이 좋아할 것이고, 가족 관광객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무엇인가 이벤트를 만들어 시청자에게 감동을 줘야 했던 PD적 발상습관 덕분이었는지 모릅니다.”

-나비를 날린다?
“군청 간부회의에서 이 얘기를 했어요. 다들 ‘저런 미친 놈이 있나’ ‘나이도 어린 놈을 군수라고 시켜놨더니 이 모양’이라는 식의 뒷말이 무성했어요. 이왕 하려면 유채꽃이나 돈 되는 한우 축제를 하지 웬 나비냐 하는 것이었죠. 군의원들한테는 ‘속는 셈치고 도와달라’고 읍소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당시 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아 유채꽃 심는 게 지자체마다 유행이었어요. 하지만 유채꽃만 심어가지고는 후발주자인 우리가 제주도를 능가할 수 없어요. 한우 축제도 이미 다른 지역이 선점한 상태라 흉내 내는 것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사생결단식으로 나비를 밀고 나갔죠. 무리하더라도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군수직을 걸고 주민과 공무원을 설득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98년 가을 함평천변에 660㎡(2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꽃을 심었다. 곤충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교육용으로 나비표본도 갖췄다. 규모도 작고 볼거리도 부족했지만 당시로서는 이색적인 이벤트였다. 마침내 99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제1회 함평 나비축제’의 막이 올랐다.

“평소 자동차로 50분밖에 안 걸리는 광주~함평 국도가 축제를 보러 오는 차량 행렬로 4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꽉 막혔어요. 축제기간 5일 동안 30만 명의 관광객이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60만 명 넘게 찾았습니다.”

대성공이었다. 어린이와 교육, 환경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나비라는 ‘온리 원(only one·유일한)’ 소재가 결합된 게 성공요인이라고 이 군수는 분석했다.

자신감이 붙자 이 군수는 전남 지역 중심의 축제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행사로 만들기 위해 깜짝쇼를 계획했다. 2000년 5월 제2회 나비축제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나비를 날려 국민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좋은 생각이라며 행사를 허락했어요.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맞춰 청와대 녹지원에서 노란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나비 2000마리를 날렸는데 장관이었습니다. 이 행사가 전국적으로 보도돼 축제 홍보 효과로 만점이었지요.”

-올해 축제는 나비에서 곤충엑스포로 커졌더군요.
“나비만 끝까지 고집하면 어느새 레드오션이 되고 맙니다. 아이디어의 세계에선 끝없이 블루오션을 찾아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12년 방송국 PD 생활을 하며 쌓은 기획력이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군수의 활동범위는 함평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40대에 기초자치단체장이 된 사람들의 모임인 ‘청목회’의 회장이다. 전국 50여 명의 현직 시장·군수·구청장이 회원이고 충북대 강형기 교수가 2004년 설립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태호 경남지사도 명예회원이다. 이 군수는 이런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청목회 회원들과 나누고 있다. 이 군수는 또 정부 부처·공기업 등 100여 개가 넘는 곳에서 강연 초청을 받은 ‘지방시대의 영웅 1호’다.

“함평 이석형 하면 이제 국민 누구나 ‘나비’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지방의 경영자들(시장·군수·구청장)은 자기만의 독특한 브랜드가 있어야 해요.”

그의 임기는 2010년 6월까지. 소리 없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 시작한 실험이 앞으로 얼마나 거대한 ‘나비효과’로 나타날지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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