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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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변호사를 따라나서지 않기 위한 버팀목으로 미스터 조를 찾은것인데 정반대의 결과가 되고 말았다.
미스터 조를 만남으로써 아리영은 오히려 코펜하겐행(行)을 결심하게 된 셈이니까.
『저녁 들어야지.인도식 뷔페 레스토랑이 생겼다는데 가볼까?』미스터 조가 청했다.함께 식사하고 싶지 않았으나 다 저물녘에 사람을 불러내놓고 그냥 헤어질 수는 없었다.
『이 근처에 열무김칫국 냉면집이 있어요.』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빨리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커피 숍을 나섰다.연인 한쌍은 아직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그러고 보니 이곳은 정길례 여사네 딸과아리영 시동생을 맞선 보게 한 커피 숍이다.잘 어울려 보였는데인위(人爲)로 묶을 수 없는 것이 남녀의 인연인 듯했다.
『그럼,어머니한테 마녀 연구를 권한 것도 조선생님이셨나요?』냉면집에서도 아리영은 계속 「마녀」에 집착했다.
『어머니는 그 전부터 마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셔서 인도의 탄트리즘에 흥미를 느끼신 것같았어.탄트리즘에서 가장 중요시되는것에 「샥티」라는 「힘」의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위로는 여신에서 아래로는 마녀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성으로 상 징돼 있어.힘이 왜 여성으로 상징되는가에 어머니는 특별히 관심을 보이셨었지.』 미스터 조의 말엔 열기가 있었다.평상시는 냉소적이지만 학문적인 얘기를 할 때는 짐승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언제나 진지했다.어머니에게도 이런 식으로 열기를 보였을테지.
이 남자에겐 중동(中東)의 풍모가 있다.아랍 신사들의 얼굴 생김새는 크게 두갈래로 나눌 수 있다.하나는 깡마르고 날카로운형이고,또 하나는 불상같이 두리둥실한 타입이다.미스터 조는 전자를 닮았다.가무스레한 얼굴에 반짝이는 검은 눈 .이젠 콧수염까지 있으니 영락없다.미스터 조가 처음 인도에 나타난 것은 20대 중반이다.이국(異國)에 와 어렵사리 공부하는 고국의 청년에게 어머니는 자상한 호의를 베풀었을 것이다.그런 어머니를 미스터 조는 흠모했고,그의 심정을 알게 된 어머니는 그를 멀리 했을 것이고…그러다 그는 그녀의 딸에게 눈을 돌린 것은 아닌지. 몸서리쳐졌다.식사를 끝내자마자 헤어지며 짐짓 손만 열심히 흔들어 인사했다.
『책은 읽은 즉시 댁으로 우송하겠어요.』 현관 문을 따고 들어서는데 빈 집의 어두움 속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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