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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클래식의 자존심 … 현대화로 ‘튜닝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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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달 29일 저녁 독일 라이프치히의 공연장 게반트하우스(Gewandhaus).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리카르도 샤이(55)가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41)를 앞세우고 무대에 나왔다. 패기 넘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가 뻗어나왔다. 공연장은 울림이 좋았다.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는 카바코스의 손가락이 악기의 지판을 짚는 소리까지 생생히 전달됐다. 조용히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2층 객석에서 아래층 관객이 살짝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게반트하우스는 옛 동독의 자존심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완전히 파괴된 공연장을 다시 짓도록 당시 동독 정부를 설득한 사람은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81). 그가 게반트하우스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음향이 좋지 않은 홀은 전 세계에 얼마든지 있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1년 완성된 게반트하우스의 수준 높은 음향은 동독 사람들의 자존심도 일으켜 세웠다.

라이프치히는 작곡가 J S 바흐가 서거 전 27년 동안 머물렀던 도시다. 성토마스 교회에서 일하며 ‘b단조 미사’‘마태 수난곡’ 등 역사적인 작품을 남겼다. 멘델스존은 오케스트라의 효시가 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최초 상임 지휘자를 맡으면서 바흐를 재발견해 ‘음악의 아버지’로 격상시켰다. 옛 동독 지역의 음악적 자부심은 이렇게 뿌리가 깊다.

서울(605㎢)의 절반이 조금 안되는 크기(297㎢)의 라이프치히에서 매년 6월 열흘 동안 열리는 바흐 페스티벌에 드는 관광객은 5만여 명이다. 성토마스 교회에서 매주 열리는 음악회 또한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이끈다.

이 지역에서 만난 음악가들은 “음악의 전통이 살 길은 ‘현대화’”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등 문화적 전통이 강한 곳들에는 관광객이 몰리고 시설이 부족해 곳곳이 공사 중이다. 음악을 새롭게 해석하고 다듬는 작업도 여기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흐는 1723년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교회에서 예배용 음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 교회의 박물관에는 “천재가 없어서 평범한 사람을 뽑아야 했다”는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다. 21세기,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소중한 자산이다.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매주 이 교회에서 바흐의 작품으로 음악회를 연다<上>. 교회의 외벽에는 바흐 페스티벌의 포스터가 붙어있다<中>. 라이프치히 최대의 공연장인 게반트하우스<下>.

◇현대 청중에 맞춰=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풍케(59)는 바흐를 새롭게 해석한다. 풍케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29년째 악장을 맡고 있다. 가장 오랜 악장 기록을 세운 풍케가 또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연주 단체가 ‘바흐 오케스트라’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단원 26명이 모여 바흐만 연주한다.

게반트하우스에서 만난 풍케는 “바흐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어떤 순서로 연주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이끄는 바흐 오케스트라는 이 협주곡을 이루는 여섯 곡의 순서를 바꿔 연주한다. 1, 5, 4번을 연주하고 중간 휴식 후 3, 6, 2번을 연주하는 식이다. 풍케는 “트럼펫 솔로가 들어 있는 2번으로 마무리하면 청중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개발이 덜 된 바흐 시대의 악기로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대해서는 “공연장이 커지고 청중이 확실한 음악을 원하는 만큼 현대 악기가 더 적합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발전된 악기의 소리를 들었다면 바흐도 만족할 거라고 본다”며 변화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현대화를 위한 노력은 도시 곳곳에서도 발견됐다. 바흐 서거 250주년이던 2000년에 맞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성토마스 교회는 다시 한번 기금 10만 유로를 모으고 있다. 설립 800주년인 2012년에 마무리할 보수 공사를 위해서다.

◇이웃 도시도 “변화 절실”=라이프치히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져있는 드레스덴에서는 새로운 콘서트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 도시 최대의 성당인 ‘성십자가 성당’의 합창단 음악감독인 로데리히 크라일레(52)는 “공산 정권 시절에 지은 ‘쿨투르 팔라스트(문화궁전)’의 음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에서는 엘베 강 근처에 상징적인 디자인의 공연장을 짓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75)는 “연주를 잘 하는 오케스트라는 각 도시에 많지만 독특한 색채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드레스덴 필의 고유한 음색을 확실히 전달할 수 있는 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 쿨투르 팔라스트에서 열린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연주는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음악의 굴곡이 확실하고 강약이 선명히 대비되는 연주였다. 이러한 음악적 터전 위에서 변화가 모색되고 있었다.

당시 드레스덴은 선거철이었다. 시민들은 이달 8일 투표에서 시장을 새로 뽑는다. 크라일레는 “드레스덴의 음악가들은 새로운 시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문화적 영화를 누렸던 전쟁 전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또한 라이프치히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페라 하우스 등을 잃었다. 그는 또 “우리 합창단만 해도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 후원 모임이 3개다. 문화를 보존하는 데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드레스덴 필은 22일 오후 8시,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바흐 오케스트라는 다음달 16, 17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연다.

라이프치히·드레스덴=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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