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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의 진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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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36면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말이 있다. 예언이 현실이 되고, 또 그 예언이 현실이 될 수 있게 스스로 그 방향으로 노력해 간다는 뜻이다. 오늘의 국제 유가 전망이 바로 그렇다. 급등한다는 전망이 나오기가 무섭게 유가는 급등 쪽으로 치닫는다.

올해 39세인 골드먼삭스의 석유 분석가 아르준 무르티는 얼마 전 국제 유가가 머잖아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예언은 시장에 이중의 충격을 안겼다.

2005년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돌파했을 때 그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예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유가의 상승 그래프가 천장을 뚫고 수직 상승한다는 ‘수퍼 스파이크(super spike)’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100달러 돌파 예언이 적중한 데다 그가 속한 골드먼삭스의 무게까지 실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100달러 돌파 예언 당시 골드먼삭스의 원유 거래자들이 그의 예언으로 큰 재미를 보았다는 오해도 적잖았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시장분석 부서와 거래 부서는 완전 독립돼 있다고 연례 주총에서 이색 해명까지 했을 정도다.

배럴당 200달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인 알제리 석유장관 입에서도 이미 나왔다. 연내 15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또 다른 전망도 있다. 반면 톰슨 파이낸셜은 유가가 연말까지 7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유가가 너무 오르면 수요가 줄고 소비 절약 및 석유 대체 투자가 본격화돼 석유 소비는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 현재의 유가 수준이 이 분기점에 다가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유가를 계속 치솟게 하느냐는 것이다. 현재의 고유가는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고 달러 약세와 원유에 대한 투기 때문이라는 것이 OPEC의 공식 입장이다. 소비대국인 일본 정부도 에너지 백서에서 “고유가의 절반 이상은 투기 자금 탓”이라고 분석했다.

석유 수급 등 시장 펀더멘털 면에서 유가가 급등할 이유는 약하다. 이렇다 할 공급 장애가 없고, 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이 전체 수요 증가의 60%를 점하는 등 성장 수요가 활발하지만 전체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및 유럽의 수요 증가세는 크게 주춤해졌다. 제조업 쇠퇴와 경제의 서비스화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에너지 집약도는 지난 10년 동안 42% 줄었다.

중국의 석유 소비는 현재 인구 1인당 연간 2배럴로 멕시코(6.6배럴)의 30%에 불과해 두고두고 수요 증가가 예상되지만 현 유가 급등의 이유로는 약하다.

문제는 달러 약세와 원유 상품 투기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유가 급등에 상승작용을 불러온다. 석유 수출국과 국제 석유회사는 석유 대금을 모두 달러로 받는다.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수출국들의 구매력과 석유회사의 수익 구조는 함께 나빠지고 증산이나 설비 확장은 위축돼 공급 불안 요인을 조성한다.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당장 석유 등 상품 투기로 눈을 돌리고 달러가 내리막일수록 그에 대한 헤징으로 원유 선물투자는 기승을 부린다. 이들 투기적 거래는 규제도 없고 10%의 계약금만으로 10배 가치의 원유를 중간에서 사고팔며 가격을 부추기고 그를 통한 시세차익을 노린다. 2007년 미국의 원유 수입금액은 3310억 달러로 전체 무역적자 7080억 달러의 47%를 점한다. 그래서 미국 내 휘발유값 상승의 절반은 달러 약세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 약세는 공급을 위축시키고 소비를 늘리며 또 다른 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고유가는 미국의 무역수지를 악화시켜 다시 달러 약세화를 불러온다. 달러 약세화와 유가 상승 간의 악순환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투기꾼은 유가 상승 기대심리를 부추기며 비관적 예언을 현실로 실현하려 든다. 오늘의 고유가는 미국의 정책과 석유 투기꾼 때문이란 OPEC 측의 비난은 이런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소비국이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를 제도화하고 대체에너지를 본격 개발할 수밖에 없는 수준까지 투기꾼이 유가를 끌어올려 준다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는 아르준 무르티의 능청이 쓴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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