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받는 ‘美·中·日 협의체’…한국은 소외 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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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08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미·중·일 협력체 구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뉴시스

한국, 美·日에 강력 항의

미·중·일 협력체 얘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한국 정부에 다가온 것은 올해 초다. 지난해 12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방문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에게 미·중·일 3국 간 정기적인 협의체를 개설하자고 제의한 조금 뒤다. 두 달 뒤 일본 언론이 엇비슷한 보도를 했을 때 우리 정부는 “알아보고 있다”고만 했다. 이 보도와 별개로 교도통신은 지난달 5일 미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 “중국의 다이빙궈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해 봄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에게 의제 제한 없이 지역의 정치· 경제 정세를 폭넓게 논의하는 3국 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반발을 우려해 당시엔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외교 소식통은 “현재 일본과 중국은 적극적이고 미국은 중립적이지만 미국이 대선 이후 적극적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고 말하고 “특히 민주당 오바마 후보 진영이 매우 적극적이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3국이 에너지 협력과 기후변화 문제 등 전 지구적 이슈를 다룬다고 하지만 3국 의제 속에는 당연히 한반도 문제가 포함될 것”이라며 “우리가 배제된 채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미국과 일본에 이 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일본 측은 “한국이 불안하면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미국·중국이 협의체를 만들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미·중·일 협의체 구성 논의는 2005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중·일 관계가 악화된 뒤인 2006년 1월 미국의 로버트 졸릭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두 나라를 중재한다고 나서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그 전에 이미 3국은 비정부기구 간 논의 형태로 안보 협력 이슈를 수년간 다뤄왔으며 미국과 중국은 2005년 9월부터 차관급 고위급 대화를(중국은 ‘중·미 전략대화’로 부름), 일본과 중국은 차관급 대화를 해오고 있다.

중국이 적극적인 이유는 미·일 동맹과 미·일·호 3국 동맹을 견제하고 미국·일본과 함께 국제적인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일본도 중국의 의도를 놓고 회의적이었으나, 중·일 관계의 급속한 복원 속도에 맞춰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미·중·일 협력체에 반대하는 근거 마련을 위해 정부 출범 직전부터 강력히 추진하던 한·미·일 협력강화 방안에 대해 신중모드로 돌아선 분위기다.

중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노골적 언급

미·중·일 3각 협의체를 추진하면서도 중국은 한·미 동맹에 대한 발언의 강도를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퇴색시킨 ‘사건’도 친강 외교부 대변인의 관련 언급이다. 친강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 첫날 “한·미 군사동맹은 역사적 산물이며 냉전시대의 군사동맹으로 세계와 각 지역에 닥친 안보문제를 다루고 처리할 수 없다”고 했다. 한·미 동맹을 폄하한 외교적 결례란 지적이 일자, “한·미 동맹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연합뉴스와 통화) 하면서도 이틀 뒤 브리핑에선 “나의 발언은 완전한 것이며 계통을 밟아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역대 정권이 한·미 동맹 강화를 언급했지만 중국은 이에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삼갔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과 함께했고, ‘혈맹’ 북·중 관계와 마찬가지로 한·미 동맹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존중해 온 것이다. 바뀐 것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이 관계자는 “전통적 한·미 동맹론을 벗어나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한 뒤 드러난 변화”라며 지난 4년간 한국의 대중 정책에 익숙해져서 나온 기대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친강 대변인은 29일 조(북)·중 우호조약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우호 협력 관계 촉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1961년 체결된 이 조약은 제3국의 침략 등으로 전쟁 상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은 자동적으로 군사력을 개입할 의무를 갖고 있다. 북한의 최대 실질 군사 협력국은 중국이다.

중첩적인 그루핑 속 실리 외교는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관계 복원을 주장했기 때문에 중국을 자극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일·호 삼각 동맹에서 최근의 미·중·일 협력체 구성안, 그리고 한·중·일 정상회담 정례화까지 국익 강화를 위한 중첩적 짝짓기가 국제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을 발판으로 중국과의 포괄적인 관계 강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하나를 채우면, 하나를 버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과거 정권과 차별화를 강조하며 외교 정책의 뱃머리를 급속히 돌리는 과정에서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4년 전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면서 많은 것을 잃었듯, 한·미 동맹 강화, 관계 복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치르는 비용도 크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한·미 동맹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어렵사리 조정해 놓은 한국의 입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국익 외교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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