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77. 사랑은 영원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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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길옥윤 선생 장례식에서 묵념하고 있는 필자.

1994년 6월 19일, 마침내 후배 음악인들이 생존 작곡가에게 헌정하는 ‘길옥윤 이별 콘서트’가 열렸다. 이 콘서트는 SBS에서 생방송했다. 방송 직전 늙고 초라한 병자 모습의 길 선생을 다시 만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판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가여운 느낌도 들었다. “시시하게 왜 아프고 그래요?”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길 선생은 콘서트에서 다시 한 번 진심을 다해 사죄했다. 부부로 일생을 함께하기에는 우리 두 사람은 삶의 방식이 너무 달랐다. 그는 예술가의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그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로서 작곡가인 길 선생의 재능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했고 또 존경했다. 길 선생 역시 작곡가로서 가수인 나를 존중했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길 선생이 한국에 돌아와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이다. 하루는 입원 중인 길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가 신문에 났다. 안 그래도 초췌해 보이는 환자복 차림에 항암치료로 듬성듬성해진 머리를 그대로 찍은 병색이 완연한 사진도 실렸다. 속이 상해 당장 길 선생 병실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환자지만 신문기자가 사진을 찍으러 오면 좀 화사한 스웨터라도 걸치고 머플러라도 두르든가 모자라도 쓰든가 하지 왜 그렇게 초라한 환자복 차림으로 인터뷰를 합니까?”

얼마 후 또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를 청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내가 말한 대로 스웨터를 걸치고 모자를 쓴 길 선생 사진이 턱 실렸다. 게다가 길 선생이 “패티가 이렇게 하고 인터뷰하라고 했다”는 말까지 실린 게 아닌가!

‘이별 콘서트’에서 길 선생은 나에게 도쿄 국제가요제 수상곡인 ‘사랑은 영원히’를 청했다.

봄날에는 꽃안개 아름다운 꿈 속에서

처음 그대를 만났네

샘물처럼 솟는 그리움 오색의 무지개 되어

드높은 하늘을 물들이면서 사랑은 싹텄네

아지랑이 속에 아롱 젖은 먼 산을 보며

뜨거웠던 마음

여름 시냇가 녹음 속에서 반짝이던 그 눈동자여

낙엽이 흩날리는 눈물 어린 바람 속에

나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사랑이여 안녕히

나는 노래를 부르며 그가 진정으로 가수 패티 김을 사랑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그 사랑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작곡가 길옥윤을 영원히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토록 원하던 고국으로 돌아와 전에 없이 강렬한 삶의 의지와 음악의 열정을 보이던 길 선생은 그로부터 9개월 후인 95년 3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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