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거스>검찰의 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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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에는 「검찰데모크라시」「검찰파쇼」라는 말이 동시에 널리 인용되고 있다.일본 검찰의 힘과 역할을 두고 내린 상반된 평가다.검찰데모크라시는 주로 매스컴이 검찰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킬 때 즐겨 쓰는 말이고,검찰파쇼는 정계로부터 검찰의 권력과잉을 비꼴 때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어느 쪽이 일본 검찰의 실상을 더 진실되게 묘사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다만 두 표현이 일본에 사는 외국인에게 주는 인상은 일본 검찰이 권력 앞에선 무척 세고,국민들로부터는 높은신뢰를 받고 있구나 하는 점이다.특히 전직대통령 의 부패문제로씨름하고 있는 최근 한국 검찰의 활약상을 보면서 일본 검찰의 모습은 여러가지를 연상시킨다.
물론 양국 검찰의 특징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한쪽은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는 대통령중심제고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힘이 분산된 내각제라는 점이 전제돼야 할 것이고,법의식과 국민의 기질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배경도 간과 해선 안되기때문이다.
이런 점을 두루 감안하더라도 양국 검찰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역시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아닌가 싶다.『검찰은 정의의 편이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일본 국민의 믿음은 『어떻게 저렇게까지…』라고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움교 독가스사건,국회의원.고위공직자의 독직사건등 이른바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사건들이 일본에도 끊임없이 일어난다.그렇지만 시민들이 『누구 누구 처단하라』고 나서는 것을 본 적이없다.그 이유를 물으면 일본인들은 대개 『검찰이 알아서 법대로처리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최근 월간지 『官界』는 역대 일본 검찰총장들과의 대형인터뷰를연재하고 있다.이들의 합치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검찰의 생명은 국민의 신뢰에 있다.국민의 신뢰는 검찰이 법의 지배를 철저히 할 때 생긴다.법의 공정한 지배는 권세에 굴하지 않고 대중에게 아첨하지 않을 때 입증된다.』 이같은 원칙을 지키려는 일본 검찰의 노력은 거의 흔들림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일본 검찰이 높은 신뢰를 쌓은 데는 정치권력에 대한 단호한 자세가 결정적이었다.국민들간에 「나쁜 정치가는검찰이 처단한다」는 인식이 심어지기 까지는 쌓은 실적이 뒷받침됐다.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후쿠다 다케오(福田赴夫)전총리도 자민당 간사장시절 자금스캔들로 기소된 바 있고,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는 총리시절의 비리로 구속됐었다.
48년이후 부패문제로 기소된 의원이 70여명에 이른 것만 봐도 검찰의 서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다나카를 구속할 땐 검찰내부에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남의 나라(미국)의회에서의 증언을 단서로 전직 총리를 구속하는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느냐가 쟁점이었다.그러나 검찰은 다른 어떤 고려보다 범죄의 응징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 이 결론이었다.권력자의 범죄를 눈감는 것은 국민의 법의식을 낮춰 궁극적으로더 국익을 해친다는 논리였다.
38년간 자민당 1당지배체제 속에서 일본 검찰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집권세력을 견제할 것인가 하는 자부심과 사명감 같은것을 키워왔다.그래서 도쿄지검 특수부의 칼날은 늘 야당보다 더날카롭게 정치권력을 겨냥했고 그런 자세는 매스 컴과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왔다.검찰데모크라시라는 말은 여기서 생겼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엘리트검사들의 공명심과 언론의 부추김이 어울려 검찰파쇼란 소리도 들었다.
큰 정치적 의혹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권력 앞에 지나치게 무력,국민의 신뢰도에 깊은 상처를 입힌 한국의 검찰이 노태우(盧泰愚)씨 부정축재 사건으로 또한번 중대한 시험대에 섰다.「권력의시녀」를 답습할 것인지,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대전환의 첫걸음을 내디딜 것인지는 검찰 조직 스스로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일본총국장) 전육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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