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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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변호사가 아리영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운을 떼었다.
『만약…,만약 말입니다.』 망설이다 말을 삼켰다.
『만약,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감미로운 아리영의 눈매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이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린지 알 수 없었으나 제너럴의 좌우명이라는 처칠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대답했다.
『…불가능은 없어요.』 우변호사는 오른쪽 입가에 매력적인 웃음을 띠었다.
『그래요,불가능은 없어요.』 모래밭이 끝나는 곳에 자갈밭이 있었다.모래밭보다 더 걷기 힘든 것이 자갈밭이다.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아리영을 우변호사가 부축했다.
『다음달 코펜하겐에 볼 일이 있어 갑니다.같이 안가주시겠습니까?』 바로 이웃 공원에라도 같이 산책가자는 듯한 그 말투에 아리영은 발을 헛디뎌 우변호사 가슴으로 쓰러졌다.
차를 타고난 뒤에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함께 외국여행을가자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느 곳 바다건 바다는 다 아름답지만 코펜하겐의 바다는 특히 아름다울 것이라 상상(想像)해왔습니다.그런 확신을 갖게 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안데르센 동화의 영향이지요.어려서 읽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한바다로 나가면 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비꽃 꽃잎처럼 파랗고,이를 데없이 맑은 유리와도 같습니다.… 「인어공주」를 읽으면서 요담에 자라면 그 제비꽃잎 같은 바다와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코펜하겐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더랬습니다.』 『처음 가시는 건가요?』 『네,해외출장이 번다해도 가는 데는 늘 정해져 있다시피 합니다.런던.파리.도쿄…,그리고 홍콩.브뤼셀.
간간이 로마나 밀라노,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코펜하겐은 처음입니다.덴마크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는데 이번에 맡은 한-일간의 분쟁문제에 덴마크의 협조를 받을 일이 생긴 겁니다.일은 2,3일이면 끝납니다.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일방적으로 결정하여밀어붙이듯 통고하는 우변호사를 새삼스런 듯 옆돌아봤다.남녀가 함께 여행한다는 행위의 의미가 아리영을 설레게도 하고 주눅들게도 했다.
북위(北緯)55도의 코펜하겐.지금 그곳은 백야(白夜)의 철이다.한밤이 차라리 초저녁처럼 환한 북국의 축제 시즌.어머니와 함께 덴마크 여행을 한 먼 옛날 일을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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